(11)된장

인터넷 등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다 보니 영화를 선택할 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미리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에 관람한 영화 ‘된장’의 경우는 단지 제목이 주는 따뜻한 느낌만을 가지고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선택한 영화였다. 아마도 내려간 기온만큼 기분도 가라앉는 가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 ‘된장’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이런 여유와 일종의 포기가 필요하다. 물론 관람료를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이런 것들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이런 여유와 포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 깊어가는 이 가을에 한국영화, ‘된장’을 추천하고 싶다.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으로 가득 차 있다. 살인마와 된장찌개가 얽혀 있고, 잔잔한 코미디가 영화 전반을 채운다. 코미디일까? 스릴러일까? 궁금해 할 때쯤이면 영화 ‘식객’의 아류인 듯한 맛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영화 말미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된장의 발효과정을 같이 이야기 하는 러브 스토리와 판타지로 이어진다. 이런 것들이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젊고 미숙한 감독의 과욕에 의한 산만한 결과인지 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곱씹고 싶은, 뭔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맛있는 된장찌개가 그럴까.

이렇게 여러 정서가 한꺼번에 표현된 영화를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항아리의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인간의 삶과 사랑으로 표현한 것 아닐까 싶다. 참고 기다린 자만이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된장과 사랑으로 이야기 하면서 풀어낸다. 밥상 위의 흔하고 흔한 된장으로 삶의 진리를 풀어가는 감독의 세밀한 시선이 놀랍다.

물론 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녀 배우의 세련된 분위기가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정서를 한꺼번에 표현하기 위하여서는 할 수 없는 배우들의 캐스팅이라고 생각이 된다.

영화 ‘된장’은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갖고 있는 속도감이나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그 동안의 한국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대담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정서의 흐름이 입체적이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다. 영화를 볼 때 산만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동안 우리가 너무 평면적인 정서의 흐름에 익숙했기 때문일 수 도 있다. 이런 것을 다양하다고 표현할 수 있어도 산만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제목으로 사용한 ‘된장’ 자체가 콩, 소금, 물 등, 똑같은 재료들로 만들어졌어도 집마다 맛이 다르고 같은 된장으로 찌개를 하더라도 그 맛이 매일 조금씩 다른 다양함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이런 산만한 듯한 영화 내용과 함께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에서 욕으로까지 사용되는 그 넓고 다양한 된장의 특성을 시각화하기 위하여서는 이 정도 산만함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눈 내리는 밤, 매화 꽃 날리는 봄날 그리고 그리움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모든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된장이 만들어진다. 세상 어떤 것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없다. 그러니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세상을 온통 잘 발효된 된장 향기로 가득 채우기 충분한 아름다운 영화, ‘된장’이었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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