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보더타운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진행되는 ‘보더타운’은 감독의 상상으로 만든 스릴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레고리 나바 감독은 ‘흥미진진한 스릴러 드라마‘를 통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도시’인 후아레스시에서 발생되고 있는 끔찍한 상황들을 고발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이러한 비극을 알리고, 멕시코 정부에게 중대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후아레스시가 최근 환경변화를 맞게 된 핵심인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와 ‘마낄라도라 산업지대(수출임가공 산업지대)’의 확산, 그리고 저렴한 노동력 확보와 대량 생산을 위한 여성 노동자 고용에 관한 짧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시카고 센티넬’이라는 신문사의 유능하고 야망 있는 여기자인 로렌은 이라크에 특파원으로 파견되길 기다린다. 하지만 편집장인 조지는 그녀를 마낄라도라 공장에 고용된 젊은 여성들의 연쇄살해사건을 취재하도록 멕시코로 보낸다.

로렌은 옛 동료이자 후아레스시에서 작은 신문사를 경영하고 있는 디아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에바는 멕시코 남부의 오하아카 원주민 출신으로 일자리를 찾아 북부 국경도시로 온 젊은 여성이다. 에바는 수많은 이 지역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변두리 빈민촌의 집으로 돌아가다가 버스기사에게 납치 당한다. 기사는 다른 공범 두 명과 에바를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이들은 에바가 죽은 줄 알고 땅에 묻어 버리지만, 목숨이 붙어있던 에바는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에바는 범인을 잡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러 디아스가 운영하는 ‘엘 솔 데 후아레스’ 신문사를 찾아온다.

로렌과 디아스는 에바가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고, 로렌은 에바가 다니던 회사에 위장취업을 한다. 일과후 로렌은 에바가 탔던 버스를 타고, 기사는 로렌에게도 같은 시도를 한다. 필사적으로 탈출하면서 로렌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문제의 버스기사는 잡히지만, 다른 공범자는 잡지 못한다. 디아스는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 한 인권단체 활동가의 집에 피신하고 있던 에바는 지속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법정에서 하기로 한 증언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도망한다. 하지만, 결국 이민국에 들켜 후아레스로 돌아오게 된다. 한편, 로렌이 쓴 에바의 기사는 정치적인 이유로 신문에 게재되지 못하게 된다. 그 대가로 해외특파원의 기회를 제의받지만, 로렌은 시카고 센티넬을 그만두고 다시 후아레스로 돌아와 ‘엘 솔 데 후아레스’의 편집장이 된다.

멕시코 후아레스시의 여성 살해사건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멕시코 당국과 인권단체가 제시하는 범죄의 규모와 근거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여성 살해범죄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1993년부터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또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20대의 메스티소이며, 마낄라도라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들이다.

후아레스시는 조용하고 작은 도시였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체결로 미국-멕시코 국경지역에 대규모 수출임가공산업지대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치안이 악화되었다. 후아레스시 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멕시코 국경 도시들에서는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유럽 등의 다국적 회사들이 앞다투어 회사를 설립하고 있다. 국제 자본과 기업들에게 마낄라도라 산업지대는 자유무역의 혜택과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한다.

‘보더타운’에서 기사화되지 못한 로렌의 기사는 신자유주의가 어떤 이유로 후아레스시에서 여성들을 계속해서 살해했는지 설명한다. 즉, 멕시코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마낄라도라 산업지대에 끊임없이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고, 다국적 기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출상품을 생산하고자 한다. 따라서 치안을 보완하여 살해사건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직원들의 귀가를 위해 차량과 경비원들을 지원하는 등의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이를 미해결 사건들로 남기고 덮어버리는 것이 훨씬 적은 비용이 들었던 것이다.

▲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후아레스시의 희생자들은 주당 55불의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이고, 자신들의 국가에서도 가난한 시골출신의 가장 힘없는 여성이자, 민첩한 손놀림으로 고용된 어린 여성들이다. 여성 살해 범죄가 일상화된 지 17년이 되어가는 지금, 마낄라도라에 들어선 대형 산업체는 여성들에게 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의 안전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신자유주의 찬성론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저개발국 노동자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더타운’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형성된 구조의 최하위에 있는 개도국 여성 노동자들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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