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미소를 안겨준 음악의 기적
24. 엘 시스테마

2년 전 스물여섯 살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청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글자 그대로 ‘열광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두다멜은 이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였으며, ‘엘 시스테마’라는 베네수엘라의 음악집중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교육을 통해 탄생한 인재이다. 2009년 9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 되었으며, 같은 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어린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악기들을 통해 클래식 음악 연주를 가르치는 집중 교육 프로그램으로, 베네수엘라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파울 슈마츠니와 마리아 슈토트마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엘 시스테마’는 2009년 EBS 국제다큐 영화제를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영화는 ‘엘 시스테마’가 어떻게 가난과 범죄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지 잘 보여준다. 영화는 한 이상주의 음악가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가난의 악순환을 끊고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 아브레우 박사는 음악이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가장 적절한 예술일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신세대를 하나로 묶는 전투라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해맑고 장난기가 넘쳐난다. 음악수업시간에는 꽤 진지하고도 행복한 표정들로 집중하고 있다. 아이들이 말하는 가난한 ‘바리오(빈민가)’의 현실은 열악하고 무섭다. 간혹 골목길에서 갱들이 벌이는 총싸움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얼른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조용해 질 때까지 숨어있어야 한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지역의 청소년들은 15세가 되기 전에 이미 마약에 중독되거나 갱단에 들어가 범죄를 저지르다가 언제 총격으로 죽게 될지 모른다. 어느 마을에서는 신발을 훔치다가 살해당한 아이의 이름을 따서 ‘안디 아파리시오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만들기도 했다.

‘엘 시스테마’는 이러한 처지의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여가를 올바르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서 부모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또, 아이들에게 개인의 음악적 능력의 향상보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자신이 맡은 악기에 대한 교육과 다른 악기들과의 조화에 초점을 둠으로써 책임감과 사회적 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시몬 볼리바르 청년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매우 역동적이다. 젊은이들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시종일관 즐거운 ‘축제’이며 객석에 앉은 청중들도 음악과 공연장의 분위기에 취해 춤을 춘다. 이는 ‘엘 시스테마’가 역동적이고 진취적일 뿐만 아니라 현대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2010년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1939년생으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음대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석유연구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정부 경제부처에서 일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아브레우 박사는 1975년 여덟 명의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최초로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 아

▲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브레우 박사는 서울 평화상 수상소감에서 ‘인류가 음악을 통해 서로 마음을 연다면 전쟁과 고통 폭력 대신 평화가 넘칠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음악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만큼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음악은 어린이들의 영혼을 되살리고 기쁨과 희망을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신의 음악철학을 말했다.

전국 221개의 음악 학교와 약 오백 개의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첼로, 플롯, 호른, 클라리넷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전혀 가난과 폭력, 범죄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따듯함과 미소를, 즐겁고 역동적이며 파격적인 청년들의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음악은 가난과 폭력에 찌든 아이들을 치유하고, 가족과 사회에 희망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까지 이루어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브레우 박사의 ‘엘 시스테마’가 도입된다고 한다. 많은 소외계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음악의 기적과 희망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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