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끝)황해

금년 연말, 누가 뭐라해도 화제의 개봉 영화는 ‘황해’일 것이다. 2008년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높은 호평을 받은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연쇄 살인범을 섬뜩하게 연기한 하정우, 그를 끝까지 추격하는 전직 형사이면서 포주역할의 김윤석, 이렇게 세 사람이 다시 만나서 제작한 영화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추격자’의 강렬한 기억을 기반으로 시작한 영화 ‘황해’이기 때문에 전작과 비교되어야 하는 것이 ‘황해’의 태생적 운명이었을 것이다. 판단의 몫은 관객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겠지만, 일단 스케일은 어마어마 해졌다. ‘추격자’가 망원동 일대의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난 추격전이었다면, ‘황해’는 중국뿐 아니라, 서울, 울산, 부산 등 대한민국 전체가 무대가 된 블록버스터급 추격전으로 영화 전체를 채운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자동차 충돌 신은 할리우드의 그것과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관객을 압도한다.

또한 전작에서 연쇄 살인범과 그를 끝까지 추격하는 전직 형사의 역할에서 보여 주었던 강렬한 배우들의 캐릭터가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영화 ‘황해’에서 보여주는 택시 운전사 구남(하정우)과 개장수 면가(김윤석)의 캐릭터 역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캐릭터들은 여전히 강렬하고 절박하며 또한 잔혹하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을 연기한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하지만 ‘추격자’에서 느꼈던 조여오는 불안감이나 공포감이 없다. 다소 느슨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스토리의 견고함보다는 더욱 더 스펙터클한 시각효과에 더 의지한 감독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감독의 선택은 아마도 빈틈없었던 전작을 뛰어 넘으려는 감독의 강박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나홍진 감독은 작품성뿐 아니라 상업성도 갖춘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추격자’와 ‘황해’를 비교하고 유사점을 찾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런 관객들의 생각을 뒤집기 위하여 나쁜 놈의 역할을 전작과는 다르게 두 배우의 역을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전작과의 단절을 이루려는 이런 감독의 또 다른 시도는 전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잔인한 장면들을 스크린에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나타나는 듯하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 인물들은 차례를 기다리면서 도살되는 도살장의 소, 돼지들처럼 차례로 피를 튀기며 착실히 나가 떨어진다. 주인공의 영웅적인 모습이나 압도하는 힘을 보이기 위한 도살이 아니고 도살 그 자체를 표현한다. 칼, 망치 심지어는 돼지 뼈도 살생의 도구로 사용된다. 인간의 본성인 야만성을 충족시키기는 것 이외에는 의미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받아들이는 관객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잘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영화이며 철저한 오락영화이다.

다시 말해서 전작과는 장르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작 ‘추격자’가 두 인물의 충돌에 의하여 발생하는 파열음을 잘 모아서 보여준 액션 스릴러라고 한다면 신작 ‘황해’는 시각적 효과에 충실한 문자 그대로의 블록버스터라고 생각된다.

영화에서 구남의 심리 묘사, 그가 살인자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은 영화의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도구이지 주제가 아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여야 피가 튀고 살이 잘려나가는 날 것들을 관객들이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황해’는 장르만 다를 뿐이지 전작을 뛰어넘는 수작으로 평가 받기 충분하다.

▲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도 있다. 가장 눈에 뛰는 것은 전작과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쫓고 쫓기는 추격이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하여 돈을 지불한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전작에 비하여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다 보니 후반에 가면서 다소 느슨해 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구남 외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묘사가 부족했던 것이 아쉽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하더라도, 장르적인 측면에서 호평 받기 충분한 수작이었다. 또한 감독과 출연 배우들의 지독한 고생과 열정을 관객들도 느끼기 충분한, 박수받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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