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크(Junk),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도시의 보석(Jewel)

◆ junk
n. ① (구어) 쓰레기(trash), 잡동사니, 폐물(廢物), 고철. ② (큰) 덩어리(lump, chunk), 두꺼운 조각(of). ③ 항해, 소금에 절인 고기. ④ 낡은 밧줄 토막. ⑤ (향유고래의) 두부(頭部) 지방조직. ⑥ (속어) 헤로인, 마약. ⑦ (미국속어) 실없는 소리(nonsense).
vt. (미국구어) (폐물·쓰레기로)버리다. ∼을 덩이로[조각으로] 만들다.

인기 SF애니메이션 아스트로보이(Astroboy·아톰)는 미래세계의 환경을 보여준다. 아톰이 지키는 메트로시티는 인류문명에 의해 지구가 더럽고 황폐해지자 경제적, 기술적으로 탁월한 신인류가 우주공간으로 띄워 올린 새로운 지구이며, 저편 아래의 서페이스라고 불리는 지구는 쓰

▲ 경남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벽화가 마을 환경 속에서 이야기의 옷을 입는다. 사진제공=앤사이버
레기 더미(junk)로 가득 차 있어 하급 계층의 사람들은 정크와 함께 버려진 존재로 그려진다. 제5원소나 블레이드 러너 등 미래세계를 그린 영화들에서도 지구의 모습은 비참할 정도로 황폐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 인류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비가역적인 생산과 소비활동을 한다면 미래의 환경이 이처럼 암울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겠다.

그러나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보다는 오히려 지구 곳곳에서 희망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에 기대는 현상들이 감지된다. 도시의 쓰레기, 정크(junk)도 사실 퇴락의 운명을 만나기 전 그 자신 가장 특별하고 새롭다 환영받던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진 도시의 흔적과 시간성 등을 비판적으로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로 재창조하는 미술, 건축, 환경, 산업들이 각광받고 있다.

낡은 다리, 건축물, 지하철 역사, 담벼락 등 도시의 퇴락한 정크; 하부구조(infrastructure) 에 메시지를 가하는 ‘그래피티(Graffiti)’는 사실 인류 도시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행위이다. 현대도시에서는 반항적인 무리들이 영역을 포시하려는 낙서라는 가벼운 행위로 여겨져 왔지만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키스 해링(Keith Harring)등으로 대표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현대화단에서 인정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최근 가장 급진적이고 창조적인 그래피티 작가는 단연 영국의 뱅크시(Banksy)로, 익살스럽지만 도발적인 그의 작품의 생명력은 작품 자체에 있지 않고 도시와 그 상황에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 숨쉰다.

퇴락된 기존 도시 시설들을 정크로 치부하여 폐기하기 보다는 기존환경에 스토리텔링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덧입혀 도시의 역사 및 시간을 복합화한 지역이 더욱 사랑받고 있다

실제로 뱅크시의 작품을 보러 그 도시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벽화에 불과한 그의 작품을 지속시키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도 들려온다. 동포루를 복원하고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며 시민단체와 예술가들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그 입소문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되자 철거방침이 철회되고 마을의 삶은 더욱 역동적으로 지속되게 된 경남 통영 동피랑 마을의 사례는 긍정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 최윤식 설계. 부산 문화골목. 골목을 끼고 있는 몇 채의 집을 최소한도로 연결하여 다층의 정크가 조합된 도시복합체를 형성한다. 사진제공=유명희

조각의 영역에서 정크를 다루는 ‘정크 아트(Junk Art)‘는 이미 1950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정크를 활용한 예술작품을 통해 전통적 의미의 예술이나 각종 폐품, 즉 정크를 만들어 내는 현대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며, 한편으로는 자원보존을 강조하는 의미로 이미 유용하게 사용했던 사물들을 활용함으로써 ‘녹색’환경의 개념을 강조하는 의미를 띠기도 한다. 초기는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컨바인페인팅으로 시작해 부서진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 세자르의 자동차를 압축한 타워, 금속과 나무 및 타이어 등을 이용하여 거대 건축물을 만든 수베로(Mark di Suvero), 장 팅겔리(jean Tinguely), 파올로키(E. Paolozzi)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오대호, 최정현(반쪽이)등이 오래전부터 정크 아티스트로 활동해 왔다.

건축계에서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오래전부터 실험적으로 행해져 온 Junk + Architecture를 간략히 표현하는 신조어 ‘Junkitecture’가 생겨났는데, 이는 도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각종 건축 폐자재, 목재 및 금속, 재활용 자재들만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건축을 말한다. 한 때 새 것이었을 때 도시민들에게 유용함과 편리함을 주었지만 이내 쓸모없어져 폐기된 재료(junk)가 건축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또 다른 정크들과 결합하면 전혀 새로운 공간과 형태가 구현되며, 이 총체적인 환경은 단순한 ‘새것’으로 조합된 건축의 ‘세련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우라’를 풍기는 것이다. 그것이 뿜어내는 새로운 시간의 이야기, 강렬한 에너지의 충돌 등을 즐기는 것이다.

이를 도시차원으로 확대하면 이렇다. 환경과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현대 도시 패러다임에서 더욱 가치롭게 여겨지는 것은 새로운 재료와 첨단기술로 단장한 새 도시보다는, 산업구조 등의 변화로 인해 도시에서의 원래 기능과 의미가 멈추거나 퇴락된 기존 도시 시설들을 정크로 치부하여 폐기하기 보다는 기존환경에 스토리텔링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덧입혀 도시의 역사 및 시간을 복합화한 지역이 더욱 사랑받고 있다. 여러 외국의 사례에서 애써 찾을 것도 없이, 버려진 서울 한강 취수장을 재활용하여 생태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선유도 공원은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아름다운 사례이다. 이곳에서도 울산의 다양한 가능성을 꿈꾼다.

마지막으로 최근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법 같은 산업이 있다. 도시광산업(都市鑛山業urban mining)이라고 하는 도시폐기물 재생사업이 그것이다. 1980년대 일본에서 나온 자원 재활용 산업의 일종으로 가전제품 등 도시에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폐기물로부터 금, 은 희토류 등의 유가금속을 추출, 활용하는 사업이다. 일본의 몇몇 업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산업에 뛰어들었으며, 휴대폰, 에어컨, 냉장고, TV등에서 금, 은을 비롯해 광산업에서 보다 엄청난 효율의 광물질들을 추출할 수 있다는 일본의 발표 자료들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도시광산업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각을 전환한다면 우리의 휴대폰 산업은 어느덧 거대한 금광 사업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미 엄청난 자원을 가진 광산이자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선형적이라고 여겨졌던 현대산업들이 그 비관적인 운명을 깨고, 가능한 모든 자원을 재활용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전자제품, 제품류를 생산할 때부터 가능하면 모든 재료와 부속품의 재활용을 용이하도록 하는 생산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인류의 지혜를 모은다면 가까운 미래에 도시에서 생산되는 모든 산물들이 정크(Junk)가 아닌 보석(Jewel)이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온 지구는 바야흐로 순환과 재생의 마술 속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꼭 조만간 그렇게 되기를 극단적인 긍정과 희망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다시 쓰레기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쓰레기가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쓰레기를 존중하며 재활용하는 자만이 죽음을 생명으로 바꿀 수 있고 이 지구에 계속해서 존재할 권리를 갖게 된다. 순환을 존중함으로써 생명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비엔나의 환경 예술가 훈데르트바써(Hundertwasser), 자연과의 평화조약(1986) 중에서.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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