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궁로 시인
한동안 바람이 제법 부드러워 봄이 오는 것 같더니 며칠 전 겨울이 가는 것이 아쉬운 듯 눈이 또 내렸다. 폭설이다. 울산에 살면서 이렇게 많이 내린 눈은 처음이다. 올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혹한과 폭설이 자주 내렸고 전국을 불안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구제역 사태가 일어났다. 구제역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래저래 힘든 겨울이었다.

이러한 때 찬바람을 맞으면 칼칼한 결기에 정신이 번쩍 나며, 잡스러운 생각들이 일시에 빠져나가고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자주 동천강변으로 나가 겨울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곤 했다. 늦은 오후 강변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것이 맥락 없는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강변엔 무성한 마른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나는 신경림의 시 ‘갈대’를 떠올린다. 한편의 시로 인해 저 강가의 갈대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도시적 감수성에 함몰된 나를 뒤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시가 주는 감성은 감정의 과잉을 다스리게 하며 건조한 삶을 달래주는 역할도 한다.

강변을 따라 가면 왜가리나 백로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새들이 날아왔다 가곤 한다. 물론 참새도 빠지지 않는다. 참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참새들이 저희들만의 언어로 서로를 부르며 이리저리 날아오르며 이가지 저가지 옮겨 다니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즐겁고 내 가슴도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참새의 지저귐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닮은 것 같아 내 가슴이 뛰기도 한다. 고 귀엽고 어린 것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것들이 뜻을 알아들을 수 없어도 얼마나 황홀하던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태화강 하구에 이르게 된다. 태화강 하구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억새밭을 오가는 사람은 없다. 바람과 석양 빛 뿐이다. 석양빛을 받으며 붉은 빛과 금빛이 섞여 흔들리는 억새 사이를 걸어가니 부부인 듯 노인 둘이 앉아 있다. 서로 말이 없다. 그들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움직임이 없는 그들의 시선은 서쪽 하늘을 향해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석양빛이 곱다. 느슨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절대침묵을 느낀다. 그리하여 나도 무념의 상태로 그 노인들 곁을 말없이 지나간다. 따라오는 것은 바람 소리 뿐이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늦은 오후를 고즈넉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이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은 노인을 잉여의 존재로 생각하며 노인들의 시간을 불편해 한다. 피트니센터들도 물을 흐린다는 이유로 60세 이상의 노인은 회원가입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노인들은 모든 위치에서 점점 소외되고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의 시간은 결코 잉여의 시간이 아니다. 그들은 젊은 날을 충분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며 누구보다 값지게 인생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있어 존재했고 그들이 있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의 시간은 존중해야만 한다. 언젠가 나도 그들의 시간에 닿을 것이고 우리 모두 그 시간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황혼녘 억새밭에 노인 부부가 새처럼 앉아 자연과 하나 되어 그렇게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구도처럼 보였다. 탈속한 표정엔 평화로움만 깃들어 있는 그 무심함이라니.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임영조의 ‘갈대는 배후가 없다’를 읽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시간을 천천히 걸어서 억새 숲을 되돌아 나왔다.

이제 곧 봄이 오리라. 돌 틈 사이를 흐르는 강물소리도 더 소란해졌으며 강변 버드나무 가지도 탱탱하게 물이 올라 미끈해지고 있다. 멀리서 보니 연두 빛이 아련하다.

이궁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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