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보존 조기매듭 계기되길

고위인사들의 잇단 암각화 방문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가 13일 국보 285호인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를 현장 방문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유별난 것으로 알려진 스티븐슨 대사의 반구대 암각화 방문은 그의 한국 사랑의 또다른 단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번 방문은 국보에 대한 대한민국과 울산의 미흡한 인식을 꼬집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그는 이번 울산 방문과 관련, 이슈가 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넉넉하게 보고 싶어 방문 일정을 하루 앞당겨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세계적으로 보존되어져야 할 중요한 인류사적 가치를 가진 유적이어서 보고 싶다는 것 보다는 도대체 어떤 유적이고 현재 보존상태가 어떠하기에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마침 15일 김황식 국무총리도 반구대 암각화를 찾는다. 김 총리는 이번 방문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과 더불어 울산시의 식수문제도 해결하는 대책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풍화작용 등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훼손이 심화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겠다며 최근 수년 동안 반구대 암각화를 찾은 정부 고위 관계자와 국회의원들이 여럿 있었지만 방문 때만 여론의 관심을 반짝 고조시키는 말 잔치 외엔 별다른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 잇따라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했고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도 방문하기도 했다.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은 지난해 초까지 4차례나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기도 했다.

김 전 국회의장은 암각화를 둘러보며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를 물고문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 인식”이라며 “모두 힘을 합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적어도 울산시민이 바라보기에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오히려 암각화 보존 문제와 연결된 울산권 맑은 물 공급대책이 정부의 의지부족(?)으로 지지부진하면서 참다 못한 울산시가 나섰다. 지난해 연말 박맹우 울산시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서라도 암각화 보존문제와 울산권 맑은 물 공급 문제를 해결짓기로 하겠다고 공론화에 나섰다. 또 울산권 맑은 물 공급의 한쪽 열쇠를 쥐고 있는 대구·경북권에도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토해양부의 광역 수자원 문제를 총괄 관리하는 수자원관리실장이었던 장만복씨를 경제부시장에 영입하기도 했다.

울산시로선 어찌보면 지엽적이랄 수 있는 수자원 확보 때문에 암각화라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될 문화재를 방치한다는 비난 여론이 적잖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고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전쟁이 불가피했다. 암각화 주변 자연경관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정부의 의지에 밀려 수차례 양보 끝에 운문댐 물을 울산의 식수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중재안으로 받아들인 울산시 입장에선 더이상 물러설 수가 없다. 암각화 보존은 현재의 문제지만 식수문제는 울산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울산권 맑은물 공급사업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사업에 조건부 선정되기도 했다. 정부가 사연댐 수위조절로 닥칠 울산의 식수문제에 조금의 배려만 해준다면 해법 찾기는 쉬워질 것이다. 대구와 경북에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고 설득한다면 결코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울산시도 영남권 신공항 문제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등에 대한 협조를 전제로 운문댐 물의 울산권 공급을 관철시킬 수도 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김 국무총리의 반구대 암각화 방문이 이전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들의 일회성 방문에 그칠지, 아니면 암각화 보전과 울산시의 식수원 해결을 조기 마무리짓는 계기가 될 지 김 총리의 행보에 시민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신형욱 사회부 차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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