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희 시인
나는 진정한 다도인은 못 된다.

차를 다루고 끓이며 마시는 바른 방법의 현상적 의미와 바른 다법으로 얻어지는 진리의 철학적 의미를 모두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들게 차 다루는 생산자의 다도 수련 과정은 생략되고, 단순한 소비자 다인으로 차를 끓여 마시는 일을 즐기며 차의 덕을 체득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차는 우리 현실 생활 속의 실천 철학이라는데 매력이 있다. 차를 달이고 마시는 행동 그 자체에서 덕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특히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좋은 습관이 반복되면 품성이 되고 품성이 쌓이면 덕이 된다.

찻물 데워 다기를 헹구면 찌든 가슴 씻어 내리고 마음은 맑게 우러난다.

고요히 예열하는 찻잔에는 차갑고 뜨거운 서로 다른 마음을 조금씩 내어주고 받아들이며 어느새 따뜻한 한 몸이 된다. 그 따뜻함은 손과 가슴으로 집안까지 온화하게 덥혀진다. 차와 맑은 영혼 다관에 넣으면 세상은 달빛 아래 찻잎처럼 평화롭게 피어난다.

정성스런 마음 숙우에 부으면 아름다운 자태 흘러내리고, 고집멸도 진리 찻잔에 따르면 욕심과 분노 어리석음 씻어 내리고 찻물은 그윽한 향기로 우러난다.

다관의 찻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따라내어 재탕 때에 타닌산이 지나치게 우러나오는 폐단을 막을 수 있는 알뜰함과 찻잔 수에 따라 따르는 양의 분배로 분수와 근검을 알며 만족할 줄 아는 지혜는 수신(修身)의 한 방편으로 차를 가까이 하여 덕목 쌓기에는 그만이다.

사마천은 1년을 살려면 밭에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면 나무를 심고, 평생을 살려면 덕을 심으라 하였다.

밖에서 식사를 한 후 시간이 허락하면 우리 집에 같이 차 마시러 가길 권한다. 그윽한 차 향기와 더불어 정이 돈독해지는 天火同人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란 조직체는 생존경쟁의 싸움터라 결국 인간이 제일 편하게 머무는 곳은 가정이다. 차를 마시는 가정은 하늘을 본보기로 불을 가까이 하므로 밝고 따뜻한 마음씨로 가정의 평화를 가져온다.

하늘과 불은 모두 위로 오르는 한 가지 성질을 가진 天火同人이다.

동인은 바깥세상에서 널리 사귀어 함께하는 것으로 사사로운 모임이 아니라 넓고 멀다는 들(野)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

물도 가다 구비를 치듯 세상을 살다보면 때론 어렵고 위험이 닥치기도 한다. 이럴 때 사사로운 이합집산과 애별리고를 밥 먹듯 하지 않는 동인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과 위험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 인간 사회는 동심협력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철칙이기도 하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늘 그 사람과 같이 있어도 좋은 사람은 향이 그윽한 진정한 茶人이다.

차를 홀로 마실 때는 그윽한 신선의 경지요, 둘이 마실 때는 기운을 서로 주고받아 만물이 그저 좋기만 한 경지다. 3~4인이 마실 때는 분위기에 취하는 멋스런 경지요, 5~6인이 마실 때는 가득함의 경지다. 7~8인 이상 마실 때는 나눔의 경지로 그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즐겁다.

한국화학연구소에 의하면 녹차는 항암 성분이 함유되었음을 발표한 것과 같이 송나라의 소식(蘇軾)이 차가 근심과 심신의 응어리를 풀어준다는 것과 신농의 ‘식경(食經)’에서 차를 오래 마시면 힘이 있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허구가 아니었음을 입증 한 것이다.

차에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여러 성분과 효능이 있다. 카페인은 이뇨와 강심효능, 근육 수축력 강화, 피로회복, 각성작용, 주독해독, 두통치유, 식물성단백질 검약제 효능이 있다. 그리고 타닌산은 인체에 흡수되려는 중금속을 저지, 알칼로이드독물 해독, 단백질 등을 침전시킨다. 이 밖에도 입 냄새와 비린내를 없애기도 한다. 또한 비타민과 아미노산, 적혈구의 증식을 촉진하는 엽록소, 갑상선종·비만·탈모를 예방하는 옥소, 불소, 칼륨, 인, 미네랄 구리 등이 있다.

유정량의 ‘다선십덕’을 보면 차는 우울한 기분을 흐트러뜨리며, 졸음을 깨게 하고 기력을 양생하며, 병을 제거하고 예절에 이롭다고 하였다. 또한 차는 경의를 표하며, 맛을 칭찬하고 몸을 닦으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도를 행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차는 여러 공덕이 나타는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덕이 쌓이는 인간상이다.

박장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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