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철 시인
흔적 남기지 않으려 했는데

군데군데 낯선

상형문자 하나씩 늘어 간다

어릴 적 누워서 바라보던 천장

사방연속무늬 사라진 지 오래인데

무늬가 자라는 옷은 헐겁다

마음의 무늬엔 김칫국물이 커피 자국이

닳아버린 몸에 밀린 일기를 쓰고 간다

아무리 문질러도 빠져나오지 않는

송곳 같은 말만 등허리 찌른다

■ 구순희 시인은

경남 양산 출생.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대 내게로 와서> <내 안의 가장 큰 적> <수탉에게 묻고 싶다> <군사 우편> 등이 있다. 200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인 창작집 발간 지원금 수혜, 2011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

한 해가 저문다. 어김없이 삶의 여기저기 ‘얼룩’이 져있다.

올해만큼은 아무런 ‘흔적 남기려 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는 반성을 하게 되는 시간이다.

그 ‘얼룩’이 만든 ‘무늬’는 ‘아무리 문질러도 빠져나오지 않는’ 낙인처럼 우울한 일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다지 나쁘게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지 않은가.

‘얼룩, 무늬’는 결국 삶의 훈장이다.

다가오는 임진년 한 해도 ‘송곳 같은 말’ 피할 길 없을 것이나 내가 ‘송곳’될 일은 아니다.

이기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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