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신동엽 창작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정지용 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 이기철 시인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절망에서 구원할 어떤 것들은 도무지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저 ‘담쟁이’를 보라. ‘절망의 벽’을 결코 탓하지 않고 ‘여럿이 손을 잡고 올라간다’. 그래서 기어이 ‘그 벽을 넘는’ 것이다.

생활하면서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할 듯.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간다’.

스스로를 일으켜 자기 혁명을 주도하는 담쟁이를 보며 다짐을 한다. 세상을 바꾸고 변화를 이끄는 힘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

이기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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