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Vertical City(수직도시)의 향방-수직적 기술과 수평적 사고의 융합

▲ 고층 고밀화하면서도 점진적인 디자인을 사용해 사용자들에게는 높이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고 도시풍경에서는 주변지형과 수평적인 조화를 이루는 오사카 난바파크의 입체정원. 사진제공 유명희
주거·사무·위락·쇼핑 등 복합기능
원스톱 서비스 가능한 ‘건물도시’
중력 거스르는 승강기 통해 대중화

고밀도·수직성 등 장점 지니면서도
장소성·공공성 등 수용함으로써
소외된 계층 배려하려는 노력 필요

* vertical
① 수직의, 연직의, 곧추선, 세로의.
② 정점의, 꼭대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 4’. 불혹을 넘겨 약간 둔해 보이기까지 하던 탐 크루즈가 첨단 찍찍이(?) 장갑을 끼고 고공 828m 건물 외벽을 오르다 130층의 건물 안으로 몸을 날려 들어가는, 이 ‘말은 안 되는데 용서는 되는’ 장면에서 때마침 불어오는 사막의 모래폭풍. 모래바람 속에 신기루같이 사라졌다 이내 반짝반짝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는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수직의 도시라고 불린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건설사가 시공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던 이 건물은 총 160층으로 1~39층은 호텔, 44~108층은 고급 아파트, 109층 이상은 사무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마어마한 부채를 안고 개장하였다고는 하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유사 이래 인간의 욕망은 중력을 거부하여 높이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해 왔다. 초고층의 비일상적 높이는 안에서는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경이로운 전망의 경험을 제공하며, 밖에서는 강력한 랜드마크로서 부와 기술과 권력을 상징한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수직도시(Vertical City)는 건물에 주거·쇼핑ㆍ위락 등 복합적인 프로그램을 수직적으로 펼쳐 놓은 하나의 ‘건물도시’로, 아파트와 호텔을 비롯해 오피스ㆍ쇼핑ㆍ위락시설을 한 건물에 둬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초고층 다기능 복합 건물을 일컫는다. 앞서 언급한 부르즈 칼리파를 위시하여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초고층 수직도시가 경쟁적으로 세워지고 있다. 수직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주거 기능의 강화로, 최고급 아파트와 콘도 호텔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와 오피스 등이 주된 프로그램이 된다. 국토해양부에서도 외국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이 같은 수직도시의 건축을 허용하기로 했다는데, 이제 수직도시에 대한 논의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되었다.

▲ 상하이 진 마오 타워(Jin Mao Tower)의 53~87층을 차지하는 호텔의 아트리움 내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이로운 장관은 깊이에 대한 비일상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전략적이다. 사진제공 유명희

그러나 필자가 공부해 온 ‘수직도시(Vertical City)’란 말은 도시공간을 3차원적으로 중첩하는 개념으로, 도시의 공공성과 역사성 등을 포함하는 다소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최근 상업적인 초고층 랜드마크 복합건축을 정당화시키는 용어로 의미가 축소된 것 같아 아쉬운 감이 크다. 관심 있는 분들께는 최근 김성홍 교수가 펴낸 ‘길모퉁이 건축’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는 ‘승강기’라는, 중력을 거스르는 발명품이 어떻게 수직 도시 발전을 견인하게 되었는지, 더불어 수직 도시를 위한 20세기의 시도들과 세계적인 초고층 건축물들의 향방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21세기, 건축계에는 수직도시를 바라보는 두 개의 ‘프레임(Frame)’이 존재한다.

한 편으로, 예를 들어 초고층 도시건축학회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가속화되는 도시화와 인구 밀집현상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고밀 초고층의 수직도시는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전제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 건축 소재 및 첨단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시각은 한 도시에 필적하는 대규모 인구를 초고층 건물에 수용함으로써 나머지 지면을 녹지에 환원할 수 있으며 도시기능의 집약화로 원거리 교통량 감소, 교통체증 감소, 화석연료 사용 억제 및 건설 폐기물 감소, 도시 내 쾌적한 환경 제공, 보안 확대, 국가 및 도시이미지 개선, 건설경기의 활성화 등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학기술의 발전으로 2015년에는 1000m,2050년에는 4000m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1000m가 넘는 극초고층 수직도시에 대한 구상을 10년 전부터 구체적으로 세워 왔다는데, 이에 따르면, 초고층 건물은 더이상 도시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 자체가 인구 10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하나의 수직도시이며, 이곳에는 주거공간뿐만 아니라 경찰서, 소방서 등 공공기관과 백화점, 놀이터,공원 등 생활편의 시설도 수직적으로 배열된다.

다른 한 편, 예를 들어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는 ‘수직도시로 인한 주거환경의 황폐화’에 대해서 논의한다. 먼저, 사회적인 측면에서 초고층의 수직건축은 공공의 접근을 단절한 고립된 섬으로서 소수의 고소득 특권층에만 접근을 허락하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지만 가시적으로는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가장 공공적인 역할을 한다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공간적 정의(Spatial Justice)’를 박탈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부유하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현 세대의 욕망을 위해 미래세대를 합법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다. 또 대규모 프로젝트인 초고층 건축으로 밀도를 높이겠다는 사고는 기존 도시의 기억과 기존 주민들을 지워내고 대형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한정된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서 공공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두 상반된 의견에서도 하나 확실한 것은 미래 도시에서는 고밀도의 ‘컴팩트 시티’를 표방한 지속가능한 도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거주와 놀이, 여가와 생산이 창조적으로 중첩되어 공간의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고 폐기물은 자체에서 재순환시키는 자급자족적인 유기체로서의 도시에 대한 필요성은 두 입장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고층 건축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제안되고 있는 ‘녹색 수직도시’, ‘수직 농장(Vertical Farm)’등도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이다. 마치 나무의 시스템과 같은 건물의 구조와 입체화된 외피구성 등으로 고층건물의 시스템을 조직하여 태양빛과 소음, 미시기후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며, 건물자체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폐기물도 정화하여 외부에의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개념이다.

초고층의 모순을 지적하는 입장에서는 ‘컴팩트 시티’의 다른 해법을 제안한다. 우리나라 도시 현실에서 고층화라고 해도 용적율 200%~300%가 보통인데, 유럽식의 연도형 건물로 5-7층의 고밀 도시를 만들어도 용적율을 350~400%까지 올리면서도 기존 도시의 맥락과 다공성, 보행위주의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는 흥미롭다.

필자의 생각도 이제는 막연히 높이 지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어떻게 지을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며 미래 사회의 자원과 재화가 수직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가능한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최근 울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고층 건축물들의 실패 사례에서도 배워야 한다. 수직의 도시는 고밀도, 인지성, 수직성의 장점을 지니면서도 커뮤니티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도시고유의 장소성, 공공성을 수용함으로서 단절되고 소외되는 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수직도의 성공 요인은 수평적 사고에 있다는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하는 건축인으로서의 이야기를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아파트 13층에서 십수년, 11층에서 6년, 18층에서 6년을 살아온 필자 자신에게 묻는다. 나머지의 삶을 정말 그렇게 더 높은 곳에서, 거기서 살고 싶은가? 대범하게 보면 우주에 떠 있는 광물 덩어리 지구에서 지표면이 0이건 100미터건 그게 뭐 큰 차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나고 자란 유년의 기억이 답한다. 특별한 날이나 단기간의 실험이면 몰라도 가능한 이제는 땅에 발 딛고 단단히 살고 싶다고. 그러나 높은 건물의 그림자에 밟히는 어두운 집은 사양하겠노라고. 이 소박해 보이는 필자의 바램은 미래 도시에서 이루기 어려운 소망이 될 수도 있겠다.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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