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 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은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갈뫼’ ‘신감각’ ‘속초시’ 동인. 민족예술인상, 제1회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수상.
시집으로 <동해별곡(東海別曲)>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이 있다.

이런저런 일로 나날이 지쳐가는 삶 속에서 진정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 이들은 가족뿐이다.

야근이 일상이고 술자리가 잦고 인간관계가 실타래처럼 복잡한 나날. ‘상처’와 ‘눈물자국’을 감추기 위해 ‘온 몸에 어둠을 바르고’ 힘없이 들어서던 그런 날들은 이제 정리하기로 한다.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차마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 이기철 시인

어둠을 걷고 나면 그제야 환히 눈에 들어오는 ‘슈퍼 집 아저씨’와 찌개를 끓이는 ‘아내’와 ‘아이들’. 평범한 일상이 되레 행복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이기철 시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