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때와 분량이 알맞음

▲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한자교육국민운동 대표
풍우의 우(雨)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뜻합니다. 우(雨)의 모양이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을 상형하고 있습니다. 우리 단군신화에도 하늘로부터 우사(雨師), 운사(雲師), 풍사(風師)를 거느리고 와서 이 땅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태평한 시대를 우순풍조(雨順風調)라고도 합니다. 바람이 적시에 불어 주고 비가 제때에 알맞게 오는 것이 우순풍조입니다. 예로부터 닷새에 한 번씩 바람이 불어 공기 흐름을 바꿔 주고 열흘에 한 번씩 비가 내려 대지를 적셔 주는 것을 이상으로 했습니다. 이를 오풍십우(五風十雨)라고 합니다. 이렇게 때맞추어 내리는 비를 시우(時雨)라 하지요. 아무리 좋은 비라도 가을날 오래 동안 내리는 비는 해롭습니다. 농작물을 수확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도 때가 있습니다. 성장기에는 영양이 넉넉해야 하고, 적령기에 맞추어 공부도 해야 합니다. 비는 세우(細雨)라 하여 가랑비도 있고 감우(甘雨)라 하여 반가운 비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홍수(洪水)를 몰고 오는 폭우(暴雨)도 있습니다.

57년도 였던가 태풍이 울산을 강타한 것이. 그 때 필자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추석 날인지라 차례를 지내려고 가족들이 모여 있는데 장대비가 태풍과 함께 몰아쳤습니다. 순간 우리집 사랑채가 큰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고, 마굿간의 소가 흙더미 속에서 죽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구호의 손길이니 자원 봉사자의 도움이니 재난지역 선포니 등등의 말은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었지요. 마을의 옆을 흐르는 거랑은 집채 같은 물결로 온통 물바다였고 냉거랑이라고 부르던 동천강 줄기는 골짜기마다 합수된 물로 도도한 바다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의식이 든 이래 처음 본 큰물이고 홍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동천강을 따라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가재 도구며 가축들, 그리고 집들이 지붕 채 떠 내려 가던 모습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폭우(暴雨)가 무서웠습니다.

지난 여름에도 우리는 혹독한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순간적인 강우량(降雨量)이 사상 초유의 수치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한자교육국민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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