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是非)를 가릴 줄 아는 마음

▲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한자교육국민운동 대표
비(非)는 ‘아닐’ ‘어길’ 등의 뜻을 지닌 한자입니다. 새의 두 날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퍼지는 모습을 본 뜬 글자로, ‘어긋나다’ 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긋나다’라는 데서 ‘그르다’ ‘아니다’의 뜻이 유추되었습니다.

결국 이 비(非)는 부정을 나타내는 동사 역할로 사용되거나, 반대의 개념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입니다. 간혹 같은 의미를 지닌 부(不)와 충돌합니다. 그러나 부(不)의 뒤에는 서술어가 오고, 비(非)자 뒤에는 체언(명사)이 옵니다. 가령 불가(不可) 불평(不平)이나, 비정(非情) 비리(非理)가 그 예에 속합니다. 그러던 것이 불법(不法), 불기(不器)로도 쓰고 비행(非行), 비위(非違)처럼 서술어와 체언을 서로 혼용해 오고 있습니다. 언어는 언중들의 관습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시비(是非)는 ‘옳고 그르다’는 뜻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일인지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맹자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타고난 정(情)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비(是非)를 분별하는 힘은 성(性)에 속하는 지(智)의 작용이라고 하네요. 양심과 지혜로움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거지요. 타고난 다른 셋의 정(情)은 인(仁)에서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예(禮)에서 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의(義)에 바탕을 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그것입니다.

비리(非理)도 이치나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말할 때 쓰는 말이지요. 요즈음 사회 정의를 말하면서 비리척결(非理剔抉)이 큰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 비(非)가 사이비(似而非)에도 들어 있습니다. ‘비슷한 듯한데 사실은 아닌 것’이 사이비(似而非)입니다. 비행(非行)을 저지르는 학생들을 사이비 학생이라고 곧잘 말합니다. 겉모습은 비슷한데 하는 행동이 그렇지 않은 것을 사이비라 합니다. 말만 잘하는 것은 정의를 그르칠 수 있고, 음탕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정통 음악을 해칠 수 있습니다. 사이비의 해악입니다. 그러므로 비슷하면서 아닌 것을 미워한다고 공자도 말씀하셨습니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한자교육국민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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