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죽을 때 고향언덕을 향해 머리를 둔다

▲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한자교육국민운동 대표
수(首)는 ‘머리’ ‘처음’ ‘우두머리’ 등의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머리 부분을 상형하여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처음 2획은 머리털을, 나머지 6획은 목덜미 위 부분의 얼굴과 머리를 본 뜬 것입니다.

학수(鶴首)의 수(首)는 머리라는 뜻으로 쓰인 경우입니다. 학의 머리처럼 길게 뺀 모습을 학수(鶴首)라고 하지요. 그래서 어떤 일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을 학수고대(鶴首苦待)라 합니다. 수미(首尾)도 머리와 꼬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처음과 끝의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특히 시(詩)에서 첫부분과 끝부분이 같은 말로 시작하고 같은 말로 마치는 것을 수미상관법(首尾相關法)이라고 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전형적인 수미상관법입니다. ‘나보기가 역겨워’로 시작하여 끝 연에 다시 ‘나보기가 역겨워’로 결말 짓고 있습니다.

수석(首席)은 일등을 말하고, 수상(首相)은 가장 높은 제상이며, 원수(元首)는 나라의 우두머리입니다. 이 수(首)가 ‘향하다’의 뜻으로 쓰인 것이 수구(首丘)입니다. ‘언덕을 향하다’가 수구입니다. 이 때의 언덕은 어린 시절 자라난 고향의 언덕을 말합니다. 여우가 죽을 때 고향을 향하여 고개를 두고 죽는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나왔습니다.

이 수(首)가 ‘칼자루’라는 뜻도 있지요. 비수(匕首)가 그렇습니다. 날카로운 칼이 비수(匕首)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형가(荊軻)는 비수(匕首)로 진시황을 시해하려다 실패한 사람이지요. 그는 위나라 사람이었는데 약한 연나라를 위해 강한 진시황을 시해하는 자객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비수(匕首)를 특별 제작했습니다. 살짝 닿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 비수(匕首)를 만들어 진나라에 바칠 두루마리 지도 속에 숨겼습니다. 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이 비수(匕首)로 진시황을 저격할 요량으로 말입니다. 진시황은 형가가 자기에게 바칠 연나라 땅의 지도를 가지고 왔다고 하니 예를 갖추어 그를 맞았습니다. 땅을 설명하기 위하여 두루마리 지도를 펴면 비수가 나오고 이 비수로 왕을 저격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만 저격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한자교육국민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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