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류생산·전환배치가 유연한 북경공장
일한 만큼 대가 얻는 평범한 진리 존재
기업 경쟁력 높이는 윤활유 노조 배워야

▲ 정명숙 편집국장

울산으로 발령받아 온 어떤 사람의 말이다. 울산에 왔으니까,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현대자동차 견학을 했다. 내심 기대가 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는 현대차 근로자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좀더 충실한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깨닫지 않을까. 그의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군데군데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근로자들은 차체가 벨트를 타고 그들 앞으로 다가오자 ‘찍’ 한번 해놓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펼치기를 반복했다. 치열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훈은커녕 오히려 힘들이지 않고도 우리나라 최고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궤변의 현장을 체험하게 한 것 같아 못내 후회가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본 현장이 현대차의 전부는 아닐 게다. 세계적인 기업이 결코 허투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 속에는 반드시 근로자들의 피땀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밤잠을 안자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현대차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고소득도시 울산도 존재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공장보다 느슨하게 일한다는 것 또한 현대차 울산공장의 현실이다.

차량 한대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시간을 나타내는 HPV(Hour Per Vehicle)는 현대차 울산공장이 31.3시간(2011년 10월 기준)으로 가장 높다. 일본의 혼다는 22.03시간, 도요타는 25.6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의 외국 공장인 미국 앨라배마공장은 14.6시간이고 북경은 19.5시간이다. 조립라인을 기준으로 적정 표준인원 대비 실제 투입된 인원수의 비율을 나타내는 편성효율로 따져보아도 국내공장은 53.4%에 불과하다. 미국공장이 91.6%, 중국공장이 86.9%, 인도공장이 88.4%, 체코공장이 90.6%에 이른다.

실제 필자가 본 북경현대차 공장에는 신문을 보거나 딴짓을 하는 근로자는 없었다. 지나치게 힘들어보이거나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느슨해보이지는 않았다. 10년의 역사를 가진 그들의 공장에는 ‘온전한’ 질서가 존재했다. 공장은 일하는 곳이고, 일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가 적용되고 있었다. 이 곳에도 공회(工會)라는 노조 역할을 하는 단체가 있긴 하지만 그들 때문에 공장가동에 문제가 발생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이 생산성을 더 독려하고 작업을 능동적으로 해나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씩 주야간 2교대 근무를 하는 그들은 주문이 밀리면 11.5시간으로 늘려 하루 7시간을 더 일한다. 혹시 장비고장으로 생산을 못하게 되면 식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 쉰 만큼 보충한다는 것도 울산공장에서 보면 신기한 일이다. 혼류생산에도 적극적이다. 1개 라인에서 4개 차종까지 생산한다. 울산공장은 2개 차종을 한개의 라인에서 생산한다. 지난 10년간 북경 3개의 공장에서 10종의 차종이 나왔는데 단종된 차종이 1개뿐인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노사협상의 단골메뉴인 근로자들의 전환배치도 수월하다. 심지어 2공장의 가동을 시작할 때는 1공장에서 70%의 근로자들이 옮겨가서 일했다. 시장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혼류생산이나 전환배치가 매우 중요하다.

울산공장의 일반 근로자는 물론이고 노조 집행부도 이같은 북경 공장을 자주 방문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 중 누구도 울산에 돌아와서 북경공장을 벤치마킹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북경공장의 중국인 근로자들도 포상으로 울산공장 견학을 하곤한다. 하지만 북경공장은 그들을 울산공장에 보내기가 망설여진다고 한다. 견학이란 말그대로 보고 배우라는 뜻인데 배우지 말아야할 것을 견학하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고 생산성만 높여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미래, 우리의 아들·딸들이 여전히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자랑스럽게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미래를 걱정하는 노조가 필요하다. 혼류생산·전환배치 등 유연한 라인운용, HPV 낮추기, 표준효율 높이기에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 기업 생존의 유일한 조건은 경쟁력이다. 경쟁력은 생산성에서 나온다.

정명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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