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도 책임국장제로 뿌리 깊은 행정을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준 비틀즈 멤버들처럼
위대한 업적은 팀이 해낸다는것 잊지말아야

▲ 정명숙 편집국장

요즘들어 더 심해진 것 같다. 대통령과 청와대만 보이고 장관이 안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책임장관제를 내세웠다. 그런데 요란한 임용과정을 거친 뒤 반년이 지나면서 장관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보기가 쉽지 않다. 간혹 TV화면이나 신문에 등장하기는 하나 사고수습을 위한 기자회견이나 강연을 했다는 사소한 동정기사에 그친다. 좋은 제도나 정책을 내놓으며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장관은 없다. 도리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깨알지시를 받아적는 ‘수첩장관’이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온다.

예전에는 장관 이름 정도는 대부분 국민들이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장관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장관이 자주 바뀌는 세태가 한 원인이기도 하지만 이름을 기억할만한 일을 해낸 장관이 없는 것이 더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지시만 따르고 공약달성에만 급급한 것이 오늘날 장관의 자화상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중앙정부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방행정을 온전히 자치단체장이 혼자서 다 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광역자치단체나 기초단체에는 수십년 공직생활을 통해 전문성을 쌓아온 실국장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방행정에 그들이 안보인다. 단체장의 아이디어를 받아쓰기해서 실행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 나름의 소신을 갖고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은 아닌지.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 앞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적인 생리다. 하지만 업무에 대해서는 소신을 갖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어느새 울산의 자치단체에는 단체장과 다른 생각을 가진 공무원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행정이 불안하다. 뿌리가 없는 부초처럼 여겨진다. 지역주민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 보다는 단체장의 ‘아이디어 상품’으로 도시를 포장하는 일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장의 산뜻한 아이디어로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경우도 없진 않다. 아니 분명 점점 살기좋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인 경우도 있다. 때론 유치하고 때론 불량품이 되기도 한다. 자치단체장의 기호에 따라 행정이 특정분야에 편중될 수도 있다. 단체장의 지적·정서적 수준이 곧 지역사회의 수준이 되는 한심한 경우도 생긴다.

좋은 행정조직이라면 단체장과 실국장이 함께 일하는 팀이 돼야 한다. 경륜 깊은 실·국장들이 소신껏 내놓은 정책과 신선한 시각을 가진 단체장의 아이디어가 오랜시간을 두고 뒤섞여 나와야 한다. 조직 내에서 적절치 못한 일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각 실국장이 소신을 갖고 추진하는 일도 있어야 하고 때론 단체장을 제치고 전면에 나서기도 해야 한다. 실국장이 의회를, 지역주민들을 설득하는 일도 있어야 한다.

지역주민들도, 의회도 무조건 단체장만 상대하려 해서는 안된다. 사실상 단체장들이 너무 고달프다. 사소한 민원부터 굵직한 정책수립까지 너무 많은 일을 한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장관제를 실행해야 하는 것처럼 지방정부도 책임국장제의 실현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천재 스티브 잡스도 2003년 CBS에 출연해서 ‘나는 비틀즈처럼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에 관한한 나의 본보기는 바로 비틀즈다. 그들은 멤버 4명이 각자가 지닌 좋지 않은 성향들을 보완해주었다. 서로 균형을 맞추어주었고, 일부가 뭉치기보다는 모두 함께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이 바로 내가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비즈니스에서 위대한 업적은 결코 한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팀으로 뭉친 사람들이 해내는 것이다.”

정명숙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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