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슬로시티 신안군 증도의 소금밭은 끝없이 넓었습니다. 그곳에 닿는 순간 소금은 생명의 근원이며 밥과 돈이요, 금보다 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캄캄한 창고마다 산처럼 쌓인 소금이 간수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오랜 침묵의 시간을 보낼 리가 없지 않겠어요.

소금꽃을 보셨나요. 염전의 결정지에서 오월의 햇살에 바닷물이 영글어 하얀 메밀꽃처럼 피어납니다. 지그시 들여다보니 ‘바스락 바스락’ 저희끼리 부딪혀 소리까지 내며 세상을 향해 오고 있었지요. 그래서 ‘소금이 온다’고 합니다. 그 꽃이 차츰 몸을 키워 바닥으로 내려앉은 늦은 오후에 염부들은 소금을 대파로 묵묵히 긁어모았습니다. 햇빛과 바람이 익혀서 빚어낸 보석이었습니다. 꽃이 피고 꽃잎을 떨어내 마침내 열매가 맺히는 것이 어디 소금뿐일까요. 우리는 꽃도 제대로 피우지 않고 성급하게 결실을 얻으려고 허둥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세상맛이 맵고 짜다고, 떫고 시다고 우매하게 주먹질을 해댔습니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저수지의 물이 증발지를 거쳐 결정지에 다다르고 소금꽃을 피우기까지 평균 25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하, 그래서 김훈은 염전을 ‘시간이 기르는 밭’이라고 했나봅니다.

박범신은 소설 ‘소금’에서 세상의 모든 맛을 담고 있는 것이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이 어우러져 끝내 매운맛까지 있다고 하네요. 그 응축된 인생의 맛을 품은 소금을 한 부대 싣고 돌아옵니다. 그것으로 김장철에 배추도 절여야 합니다. 젓갈 담그는데도 천일염만한 게 어디 있나요. 간장이나 된장 같은 발효식품은 물론 장아찌도 만들어야지요. 음식의 생명은 염담 맞추기에 있으니 양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하긴 세상도 간 맞추기가 잘 되어야 하고 문장을 쓰는데도 농담이 필요하지요. 무엇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세태를 향해 소금 두어 바가지 내리쏟으면 숙부드러운 맛이 나지 않을까요. 씨알 굵은 미꾸라지에 한 줌만 뿌려도 거품을 내며 바짝 엎드리겠지요. 뻣뻣하여 제 잘난 맛에 고개 치켜든 사람들에게 휙휙 흩뿌리면 금방 녹녹해질 것입니다.

소금꽃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말을 잃었습니다. 소금 먹어 숨죽은 노란 배춧속처럼 순해진 탓입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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