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쾅! 끼이익-” 천둥치는 소리에 굉음이 더해집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베란다 창문을 엽니다. 집 앞 네거리에 오토바이가 연기를 피우며 누워있고 한 남자가 저만치 나가떨어져 있네요. 서행을 해야 할 곳에서 질주 본능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남자가 천천히 일어납니다. 나는 잠시 멎었던 숨을 길게 토합니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쨍쨍한 햇빛이 아스팔트에 내리 꽂히는 오월의 한낮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봅니다.

오월은 우주 만물이 시시각각 나고 죽는 염념생멸(念念生滅)의 달입니다.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고 앵두와 딸기가 단물을 머금고 익어가지요. 전나무의 바늘잎도 순하게 올라옵니다. 꽃향기에 취해 있다가 가슴 에이는 부음을 받았습니다. 함박꽃 속에서 가까운 이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맥을 놓았습니다. 마주보며 차를 함께 마시던 사람이 불귀객이 되었다는 비통한 사연도 날아들었지요. 잘 있다는 기별처럼 짧아서 한동안 넋을 잃었습니다. 수은주가 30℃를 오르내리는 때 이른 더위에 검은 옷을 입고 상갓집을 다녔습니다. 몸은 무거웠고 마음은 감감하게 내려앉았지요.

며칠 전에는 오촌 당숙의 부고를 전해 듣고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랜만에 사촌과 재종형제들을 만났지요. 우리는 쭈뼛거리며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는 일에 발목이 잡혀 소식이 뜸했던 일가붙이들도 만났습니다. 당숙을 빼 닮은 머리 허연 남자와 여자, 그리고 다른 듯 닮은 실팍한 젊은이들이 있더군요. 한 세대가 사라지는 대신에 창창한 청춘들이 미래와 함께 오고 있었습니다.

햇살 뜨거워 꽃봉오리 여기저기서 터지는 오월, 화살 하나가 내 심장을 관통하더니 설핏 통증이 느껴지더군요. 죽음도 삶의 연장선에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향냄새가 번져나는 장례식장만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 생명을 잉태한 산모를 위해 기장미역을 샀습니다. 백일이 된 아기가 입을 부드러운 옷도 장만했지요. 생과 멸은 이렇게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걸어 오더라니까요.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라 했습니다. 천지간에 생명의 소리가 넘치는 누리달인 유월이 벌써 자리를 잡았습니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