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재봉틀을 돌리던 어머니 옆에서 홈질을 하여 인형 옷을 만들었습니다. 왜 그리 맵시가 나지 않던지 매번 실망스러웠지요. 엉성한 바늘땀이 문제라며 어머니는 연필심만큼 한 땀을 두어야 한다고 연필을 바늘 끝에 대 보였습니다. 바느질자의 제일 작은 눈금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에계계 겨우 고것” 열두 살 내가 자신이 없어 심술을 부리자 그 짧은 한 땀이 백리 길을 만든다고 달랬습니다.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블라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틈만 나면 2㎜를 강조했습니다. 땀이 절대 그 길이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솔기에 박음질을 할 땐 자로 재어 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내가 꿰맨 솔기는 군데군데 미어져 실밥이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바느질쟁이는 못하겠다며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나야말로, 겸손하게 등을 휘고 앉아 삯바느질을 하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느질은 잘 못하면서 취미생활이 되었지요. 그런데 2㎜가 항상 내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꽃수를 배우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지요. 무명천에 온갖 들꽃을 피워내는 데는 바늘뜸새가 더 고와야 했습니다.

오늘은 두 겹의 천 사이에 얇은 솜을 넣어 색실로 촘촘하게 온박음질을 합니다. 2㎜ 간격으로 외씨를 박은 것처럼 갸름한 길을 수없이 만드는 잔누비질입니다. 바느질이 자꾸 어스러집니다. 땀도 갈팡질팡 합니다. 꿰맨 실을 다 뜯어내고 새로이 시작하다 바늘에 찔렸습니다. 새빨간 피가 솟더니 연푸른색 천에 붉은 꽃잎 한 장을 그리네요. “쯧쯧, 맴을 모아야지” 조각 천을 이어 보자기를 만들던 예전에도 자주 바늘에 찔려 어머니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습니다.

새 천을 꺼내 다시 마름질을 합니다. 헐거워진 마음을 지그시 눌러 앉힙니다. 실을 고르고 바늘에 꿰어 매듭을 짓습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지요. 실을 곱걸어서 꿰매는 온박음질은 얼마나 튼실한지요. 박음질처럼 한걸음 물러나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면 인생도 허방을 짚을 일은 없겠지요. 여우비가 스치더니 햇빛이 거침없이 거실로 들어옵니다. 내 손놀림이 경쾌해지더니 땀땀이 죽 앞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2㎜로 십리 길은 갈 수 있을 듯합니다. 쓸 만한 ‘색실 누비장지갑’이 곧 탄생될 것 같습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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