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지오토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함 또는 애도함’

▲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함 또는 애도함>, 200×185cm, 프레스코 벽화, 1305년경, 이탈리아 아레나예배당.

요즈음의 한국미술계의 동향을 살핀다면 팝아트(Pop art)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듯하다. 권위적이고 무거운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작품들이 팝아트의 생기발랄하고 좌충우돌하며 재치 넘치는 작품들에게 자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한국미술의 경향이 대중주의와 대중미술이라는 일상의 기치를 앞세운 팝아트의 미술경향에게 자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시민과 대중의 일상으로 좀 더 다가간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문화현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술, 혹은 예술의 역사가 ‘높은 신으로부터 아래의 시민대중으로’의 진행을 하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흐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으로 하향을 지향하는 미술작품들의 특성에서 매우 뚜렷하고도 획기적인 변화를 남긴 작가가 르네상스 초기의 이탈리아 작가 지오토Giotto di Bondone, ?~1337)이다. 그로부터 오늘날의 회화의 탄생과 작가의 탄생이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을 위한 현실적인 작품의 표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비로소 가능했던 르네상스의 탄생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의 시·공간으로만 여겨왔던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의 시·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 내려온 예수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골고다 언덕으로 여겨지는 언덕의 아래에 누워있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늘어진 두 팔을 잡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슬픈 모습이 보인다. 죽음을 상징하는 듯 언덕위의 나무는 메말라 있으며 하늘에는 아기천사들의 슬픈 애도행렬이 이어진다. 마치 연극무대와 같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예배당에 그려진 연작벽화로서 지오토를 알게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 곽영화 화가·칼럼니스트

현대의 미학자들과 미술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그의 그림을 인간을 위한 현세적 그림으로서 비로소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현실적 회화의 탄생으로 여긴다. 초월적인 종교성과의 단절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매우 구체적이고 개별화된 공간구현을 이룬 작품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 속에서 힘찬 육체와 감성을 가진 인간의 구체적인 묘사는 이후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바탕을 확고하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지오토로부터 비로소 인간의 시·공간이 탄생되었으며 그림은 이러한 사고의 전환과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품이 되는 것이다.

비록 지오토로부터 시작된 오래된 이전의 회화작품은 이후에 신들의 시·공간이 인간의 주체적인 시·공간으로 대체되어 전면화 되었지만 오늘날 시민대중의 일상이 중심을 이루는 팝아트의 등장까지는 결코 적은 시간이 소요된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시·공간이 비로소 진정한 시민대중의 시·공간임이 팝아트로 인해 확인되고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의 사회의식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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