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조금 힘이 드네요.” 전화선을 타고 오는 아들의 풀 죽은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생전 제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녀석이었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앓는 소리 한번 내지 않았거든요. ‘힘들다’는 말은 잘 웃고 긍정의 힘을 믿는 아들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주저앉고 싶은 날이 많은 법이라고 말은 했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요. 분명 ‘조금’이라고 했는데 ‘많이’로 들려 가슴께가 저릿하게 아팠습니다. 나는 어미니까요. 자발없이 집안을 다니며 부스럭대다가 극장으로 갔습니다. 복잡하게 엉킨 생각을 털어내려면 영화가 제격일 것 같았습니다. 마침 근처에서 저녁 모임도 있었답니다.

내 계획과는 달리 만화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체증을 확 날려줄 액션물이 없나 살피다가 화려한 동물 캐릭터들이 그려진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지요. 엄마 손을 잡고 온 유아들이 주요 관객이었습니다. 늙은 여자 혼자 앉아있기가 쑥스러운 자리이긴 했지만 뭐 어떤가요.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진 않더군요. 아기 고래 쿠우가 호비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극장에서 나눠준 메가폰으로 아이들은 호비도 불러보고 율동도 따라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초등학생 아들이랑 극장에서 <로보트 태권브이>를 보았었지요. 같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종일 본 적도 있습니다. 주제곡을 크게 따라 불러 가면서 말입니다. 아, 짜장면도 배달시켰었지요. 그땐 사는 일이 만화영화처럼 단순 명쾌하지 않다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요. 하긴 낯선 타지에서의 삶이 무름할 리가 있나요. 가장의 책임도 어깨를 지그시 누르겠지요. 영화 속 호비와 친구들은 바다에서의 온갖 모험을 이겨내고 쿠우의 엄마를 찾는데 성공합니다. 고된 일의 끝에는 기쁨이 따라 온다는 것을 순하게 보여주었지요. 그런 진리를 아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만화영화를 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금방 전화가 왔습니다. “아~ 호비요. 뽀로로만큼 아기들에게 인기가 좋지요.” 낮게 웃으며 제 아들을 데리고 극장으로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아침보다 목소리가 한결 밝았습니다. 아무 걱정 말라는 말도 애써 덧붙이더군요.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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