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찬 UNIST 홍보대외협력팀장·12기 독자위원

전북 군산에 가면 ‘이성당’이란 자그만 빵집이 있다. 시내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동네 빵집’이다. 이 빵집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북새통이다. 전국 각지에서 이 집 빵맛을 보겠다고 찾아 온 사람들이다.

가게 밖도 장사진이다. 모퉁이를 돌아 ‘ㄱ’자로 늘어선 줄이 대개 100m는 된다. 주말엔 족히 1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간신히 이 집 빵을 맛볼 수 있다. 평일에도 30분 이상 줄서기는 예사다. 그러고도 가장 인기 있다는 야채빵은 한 사람당 고작 5개, 단팥빵은 10개 만 살 수 있을 뿐이다.

이 빵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빵집으로 이름 나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0년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94년 전이다. 당시 일본인이 개업한 화과자점이었는데,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인이 인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 이 빵집은 각종 언론의 ‘전국 3대 빵집’, ‘5대 빵집’ 하는 컬렉션에서 여간해선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최근엔 서울 잠실의 한 백화점에 출점 매장까지 냈다.

사실 이 집 빵맛이 그 유명세 만큼이나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개인 취향이긴 하겠지만 오히려 평범한 쪽에 가깝다. 맛으로만 따지자면 전국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비해 특별히 나을 성 싶지도 않다. 매장이 독특하거나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빵맛 외에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이 모퉁이 빵집의 진짜 매력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한 자리에서 지켜 온 ‘특별한 장소’라는데 있다. 그리고 그 세월동안, 이 빵집에 애틋하게 배여 있는 군산 시민들의 ‘소중한 추억’이다. 요즘 유행어로 치면 ‘스토리(story)’인 셈이다.

옛적 이 빵집엔 청춘의 설레임으로 가득했을 군산의 처녀 총각들이 수도 없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제 각각 결혼해서는 제 아이들 손을 잡고 소싯적 추억이 배인 이 빵집과 모퉁이 골목길을 함께 누볐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다시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 모퉁이 빵집의 유리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모퉁이 빵집의 추억은 그렇게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객지에 나가 있는 군산 사람들에겐 이 모퉁이 빵집의 추억이 곧 고향의 이미지일 것이다. 간만의 귀향 길이나 출장 길에 모퉁이 빵집의 빵굽는 냄새와 눈에 익은 매장에서 고향의 냄새와 아늑한 품을 한번 쯤은 느꼈을 것이란 상상을 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고향 친구들과 모퉁이 빵집의 추억을 얘기하고, ‘역전의 명수’로 이름났던 군산상고 야구팀의 신화를 되씹으며 객지 생활의 고단함을 위로받기도 했을 것이다. 모퉁이 빵집은 그렇게 도시민의 추억을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 내고 있다.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 온 특별한 추억의 장소가 주는 마력같은 힘이다.

울산에선 107년 역사를 가진 옛 울산초등학교 교사(校舍)가 지난 주 완전히 헐렸다.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추억의 장소가 한 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 수개월간 계속된 철거와 보존 논란은 더 이상 필요조차 없어졌다. 이제 옛 울산초등학교의 추억들은 하나 둘 지워질 것이다. 수많은 졸업생들의 어린 시절 술래잡기도, 학교 주변으로 형성됐던 옛 울산 도심의 갖은 애환과 영광도 빠르게 잊혀져 갈 것이다.

허물어 낸 옛 울산초등학교 부지엔 울산시립미술관을 짓는다고 한다. 당국에선 학교 건물 모습과 철거 과정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후대의 자료로 삼겠다고 한다.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추억의 장소에 녹아 배였을 시민들의 애틋한 추억을 되담기란 불가능하다. 도시의 추억은 오랜 시간, 시민들의 애환이 쌓이고 쌓여 묵은 맛과 냄새, 빛깔이 배어 나와야 제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김학찬 UNIST 홍보대외협력팀장·12기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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