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추석 풍속도 빠른 속도로 변화
갈등도 있고 전쟁터로 변할 수도 있지만
명절에는 가족과 나누는 마음가짐 필요

▲ 박철종 뉴미디어부장

해마다 가정폭력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 아내의 남편에 대한 폭력,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폭력, 형제간의 폭력 등 가족간의 모든 폭력을 통틀어 그 증가세가 꺾일 기미가 없다. 가정폭력방지법상 가정폭력은 구성원 사이의 신체적·정신적·재산적 피해를 수반하는 모든 폭력을 포괄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여러 번 지속적으로 있어야 신고 가능한 것이 아니어서 어느 경우든 폭력이 있다면 신고가 가능하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가정폭력 건수는 총 9999건이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올해 가정폭력 건수는 1만7141여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6848건, 2012년 8762건, 2013년 1만6785건이었던 점에 비춰 올해도 하향곡선을 그리지 못할 것 같다. 유형별로는 아내를 대상으로 한 학대 건수가 3년 연속 가장 많았다. 그 뒤로 남편 학대, 노인 학대, 자녀 학대 등의 순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하고, 자식이 부모를 처벌해 달라고 신고하는 일이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자녀의 폭언·폭력을 부끄럽게만 생각하고 참아내던 모습을 점점 찾기 힘들다. 본인이 잘못해 회초리를 드는 부모나 조부모를 경찰을 불러 해결하려는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다.

가족·친척간의 법정분쟁도 예사로 이뤄진다. 부모지간 또는 형제지간에서 재산을 놓고 벌이는 소송은 이미 익숙해졌다. 아버지의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형제·자매간의 갈등은 재벌가에서만 이뤄지는 풍속도가 이미 아니다. 변호사들도 가족간 분쟁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소송을 유도하는 추세다. 이혼사건을 맡으면 예전에는 화해부터 시켜보려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의뢰인을 부추긴다. 상대방이 재산을 없애지 못하도록 가처분과 가압류를 하도록 조언하면서 재산분할, 위자료, 자녀양육비 등의 소송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일반화됐다. 그래서 이혼소송은 변호사 입장에서는 가장 큰 수입원이기도 하다. 법원의 이혼법정은 ‘돌싱’(돌아온 싱글) 예비후보들로 항상 넘쳐난다.

통계청이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명절과 이혼 사이에 상관관계가 뚜렷하다. 명절을 지낸 후 이혼 건수가 명절 직전 달보다 평균 11.5%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명절을 맞기 두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예부터 추석은 땀으로 가꾼 곡식이 영글고 갖가지 과일이 풍성해 인심마저 후해지는 명절이었다. 넉넉함과 후함의 기준은 결코 살림살이의 좋고 나쁨이 아니었다. 가족·친지를 바라보는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고, 서로를 배려했다. 명절밑에는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아 성묘하고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날 생각으로 설렌다. 하지만 우리들이 관심을 쏟아야 될 눈시울 적시는 이웃도 많다. 고향 잃은 실향민, 떡구경도 못하는 가난한 이웃, 양로원에서 홀로 계신 어르신들, 먼 이국까지 시집 온 다문화가족, 임금체불 근로자들이 적지 않다.

추석 풍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차례를 지내는 전통 대신에 가족단위로 친목 도모나 얼굴 보는 날로 바뀌는 추세다. 고유의 미풍양속이 살아있는 명절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 누구도 단언하기 힘들다. 이럴수록 ‘나눠 갖고 나눠 먹는’ 마음 씀씀이가 더 필요해 보인다. 갈등도 있고, 전쟁터일 수도 있겠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명절이기를 바란다.

박철종 뉴미디어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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