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투자일수록 다수의 찬성 못받아
현명한 의사결정은 다수결 원칙과 무관
본능적 반대와 시시비비 구분지어져야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어떻게 낙찰가가 10조5500억원이나 되냐고요.” 현대자동차가 삼성동 한전 부지를 매입했다는 소식에 대다수는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필자 또한 너무 비싸게 샀다는 반응을 본능적으로 보였다. 입찰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도 주주, 언론, 외신들도 경영진들의 판단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다수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소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야말로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능적인 반응에 그치지 않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의 정확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반응과 이성은 이따금 충돌하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의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교수는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이번 건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참고로 드는 사례는 KB금융 건이다. “과거 KB금융의 경우 ING생명 인수 건과 관련해 인수금액을 이사회가 치열하게 논의했고 그 과정에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사퇴하기까지 했다. 현대차의 경우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이사회는 구성원들이 모여서 수십 시간을 들여서 치열한 논쟁을 하면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여기에다 이사회 멤머들이 숫자가 더 늘어나게 되면 이사회 멤버의 수에다 토론 시간을 곱하면 의사결정을 위해 투입된 총 시간이 나오게 된다. 총 투입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결과물인 현명한 의사결정이 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이따금 투입과 산출을 인과관계로 파악한다. 더 많이 투입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특히 미래를 상대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하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토론이나 고민에 참여하였는지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투입과 산출 사이에 거의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미래를 향한 의사결정이다.

이사회는 절차상 합법성을 지녀야 한다. 이사회 멤버들은 입찰 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간단한 의견을 표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를 쓸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의사결정의 핵심에 대해서는 집행 임원들에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현명한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과는 인연이 깊지 않다. 다수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결정일 수는 없다. 우리의 경제사나 경영사를 보더라도 미래를 향한 위험한 투자일수록 다수의 찬성을 받지 못하였다. 평균적인 사람의 본성은 위험회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질서에 약간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하게 돼 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내리는 재테크와 관련된 의사 결정이나 진로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생각해 보라. 엄밀하게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올바른지 아니면 틀린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은 되돌아 볼 때만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사건이나 현상이 진행될 때는 누구든지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거액을 들인 현대자동차의 삼성동 부지 매입 건이 경영진이 범한 최악의 실수가 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그 결정이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이 내린 가장 멋진 의사결정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를 두둔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처음의 반응은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인 반응과 이성에 바탕을 둔 시시비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자 한다. 기업가들이 내리는 위험을 건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 위험을 건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조선,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경부고속도로 등이 가능하였다. 주주, 노조, 외신 등이 모두 “당신들 정말 잘못한거야”라고 외치는 속에서도 나는 “한번 두고 보자, 누가 잘하였는지, 잘못하였는지”라고 말하고 싶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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