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에 검열의 칼 들이대는 현실
수사 편의 위한 사적 통신검열 제한돼야
재발 막으려면 법적·제도적인 정비 필수

▲ 박철종 뉴미디어부장

최근 불거진 ‘카카오 검열’ 논란 이후 ‘사이버 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해외에 서버를 둔 제3의 메신저로 속속 이탈하는 것이다. ‘텔레그램’ ‘라인’ ‘와츠앱’ ‘바이버’ 등 해외 메신저들이 국내에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특히 독일 모바일 메신저 업체인 ‘텔레그램’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유저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주에만 150만 명 이상의 한국 사용자가 등록했다고 전해진다. 지난달 19일 검찰의 사이버 검열 강화방침 발표 이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수사당국의 사이버 검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다 다음카카오가 당국의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의혹이 불을 당겼다. 한국에서의 인기에 놀란 텔레그램은 지난 7일 한국어 버전을 출시해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다음카카오는 지난 1일 합병기업으로 출범했다. 정체된 국내 IT산업 발전의 견인차로 큰 기대를 모았다. 다음카카오는 그러나 ‘카카오 검열’ 악재가 돌출하면서 지난 8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텔레그램 가입 열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 또 카카오톡의 이탈현상은 언제쯤 멎을까. 모바일 업계에서는 국내 유저들의 텔레그램 열풍을 우려섞인 시각으로 관망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인터넷 실명제 도입과 2009년 MBC PD수첩 이메일 압수수색 이후에도 사이버 망명 바람이 불긴 했다. 최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외국 SNS가 국내 SNS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마당이다. 여기에 정부의 과도한 ‘사이버 감시’가 겹쳐 IT 관련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쳐 숨통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검찰도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와 카카오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신저는 상시 모니터링 대상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상당수 누리꾼들은 검열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근 잇따르는 ‘사이버 망명’을 ‘불필요한 정쟁이 부른 국익저해 행위’로 규정해 반감을 사고 있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 8일 ‘사이버 망명, 국민 개인의 통신자유 보장과 국익이 우선’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최근 검찰의 사이버 공간에 대한 모니터링 방침이 국론분열 방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내산업 발전이 저해되는 상황이 더는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발단이 검찰의 메신저 모니터링이었는데도 국내 유저들이 외국계 메신저로 갈아타는 현상을 나무란 꼴이다.

텔레그램은 독일 모바일 메신저 업체지만, 러시아의 ‘브콘닥테’ 설립자인 파벨 두로프가 만들었다. 무료 모바일 메신저인 ‘브콘닥테’는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라고 불리며, 대화내용이 암호화되는 등 보안에 특화된 점이 특징이다.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 정부의 정보제공 요구를 거절하고 러시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한 사람이다. 검찰의 모니터링 조치가 국민의 입을 막겠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검열에서 자유로운 곳으로 새 둥지를 튼 한국 유저들처럼.

이번 사태는 표현의 자유에 검열의 칼을 들이대는 현실 앞에서 최소한의 반대 표현으로 해석된다. 모바일 메신저로 민감한 정보를 교환하든 아니든 사적인 대화내용을 사법당국이 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듯 하다. 일부 유저들은 한국에서 메신저 검열이 이뤄질 것을 미리 예견해 텔레그램 메신저를 만든 파벨 두로프의 탁월한 선견지명에 감사한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해외 메신저로 갈아타는 ‘사이버 망명’ 또는 ‘메신저 망명’이 이번 사태의 돌파구는 아닐 것이다. 수사당국의 편의만을 위한 사적인 통신 검열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 검찰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이 표현 또는 통신의 자유와 충돌한 이번 현상에 대해 법적·제도적 정비가 뒤따라야만 한다. 더욱이 무슨 메신저를 사용하느냐 보다는 최소한의 개인정보는 스스로 지키는 게 최선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박철종 뉴미디어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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