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이래 최대위기 겪고 있는 현대重
어려운 경영여건 속 노사갈등 ‘이중고’
노사 상생협력으로 위기상황 돌파하길

▲ 이태철 편집국장

세상이 참으로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말끝마다 ‘울 엄마’ ‘우리 아버지’ ‘우리 선생님’ 하며 자기와 관련된 여러 사람을 통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에 사로잡혔던 때가 불과 얼마전이다. 자신의 부인까지도 ‘내’가 아닌 ‘우리 마누라’라고 소개했을 정도이니 오죽했을까. 일각에서는 지나친 동류의식에 의한 패거리 문화까지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어떤가. 소설가 이외수가 <아불류 시불류>라는 책을 통해 밝힌 것 처럼 “인간은 딱 두가지 유형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형국이다.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좋은 사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규정, 나머지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눈만 뜨면 헤게모니 쟁탈전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은 기본이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까지도 이해관계에 따라 ‘니편, 내편’으로 갈리기 일쑤다. 상대방을 염두에 둔 ‘역지사지‘는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 지경으로, 이제는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 보다는 끝없는 힘대결로 상대를 짓누르고 소기의 목적을 쟁취하려 한다.

최악의 실적부진으로 울산지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현대중공업 노사의 지금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난 19년간 무쟁의 사업장으로 노사평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현대중공업 노사가 정작 어려운 순간을 맞아서는 심한 파열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0월 말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1조9346억원의 창사 이래 최대 영업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 87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한 이후 올해 1분기 1889억원, 2분기 1조1037억원, 3분기 1조9346억원으로 영업손실 규모가 지속적으로 불어나며 누적적자만도 무려 3조2272억원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앞다퉈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나서고 있고, 주가 또한 연일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한때 코스피 순위 3위까지 올랐던 현대중공업의 시가총액은 이제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경영진의 걱정이 결코 엄살이 아님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울산 시민을 포함한 전 국민이 현대중공업의 장래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라는 회사가 어떤 회사인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개척정신으로 세계 최대의 기업군을 일군 그야말로 저력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때맞춰 현대중공업은 이같은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임원 31%를 줄이고, 불필요한 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등 자구책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권오갑 사장은 9월15일 부임 이후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노사관계의 돌파구를 찾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9년간 ‘노사상생’을 실천하면서 매출과 고용 증대를 통해 글로벌 종합중공업 기업으로 발전해 왔던 현대중공업이 현재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사협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임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회사의 지불능력을 넘어서는 요구안을 계속 고집, 파업 운운하며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물론 노조로서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잘 나가던 시절 과연 회사가 정당한 대우를 해줬던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현대중공업의 노사마찰이 이어질 수록 공정지연에 원가상승 압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급기야는 매출손실과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조선업계의 경영환경 속에서 그동안 모범적인 노사관계로 얻었던 안정적인 파트너로서 신뢰를 상실, 이는 곧 신규 발주 중단 등의 영업차질을 초래해 현재의 경영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야 말로 싸울 때가 아닌 것이다.

이태철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