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도쿠가와가 성이 난 고양이 눈과 입 모양새로 말했다.

“죽도는 조선에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박어둔이 개의 등 털을 쓰다듬으며 받아쳤다.

“조선은 초량왜관을 폐쇄할 것입니다.”

왜관의 역사는 1407년 시작되어 이후 약 300년 동안 수차례 폐쇄와 재개를 반복했다.

태종은 1407년 동래의 부산포와 웅천의 내이포를, 1418년(태종 18)에는 울산의 염포와 고성군의 가배량을 개항해 왜선을 이곳에만 정박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듬 해(세종 1) 대마도 정벌을 계기로 개항장은 폐쇄되었다.

그 뒤 대마도 도주인 소 다다모리의 간청으로 1423년에는 부산포와 내이포, 1426년에는 염포에 왜인의 내왕을 허가해 삼포가 개항되었다.

그러나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폐쇄되었다가, 1512년 임신조약으로 인한 국교 회복과 동시에 처음에는 제포만을 개항했고, 부산포를 추가하였다. 그런데 1541년 제포에서 조선의 관병과 왜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자, 제포를 폐쇄하고 왜관을 부산포로 옮겼다.

그러나 1544년 사량진 왜변으로 다시 통교가 중단되자 왜관도 폐지되었고, 다시 1547년(명종 2) 정미조약의 체결로 부산포에만 왕래를 허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다시 폐쇄되었던 왜관은 1607년(선조 40) 국교 회복과 더불어 부산항내 두모포에 새로 설치되었다가 1678년(숙종 4) 초량 왜관으로 옮겼던 것이다.

도쿠가와가 말했다.

“왜관은 치폐는 전쟁과 같은 중대한 사건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 만약 조선이 초량왜관을 폐쇄한다면 그날부터 일본해군은 동래부를 점령할 것이다.”

“좋소이다. 그러면 조선수군은 원래 조선 경상도의 직할령이었던 일본 대마도를 점령해 조선 땅으로 삼을 것입니다.”

박어둔도 지지 않았다.

도쿠가와와 박어둔의 팽팽한 대립 속에 갑자기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한 여인이 들어왔다. 도쿠가와의 어머니 오타마노가타였다.

도쿠가와가 놀라며 말했다.

“어머니가 여기에 어떤 일이십니까?”

오타마노가타가 말했다.

“박어둔 태수님, 안고 있는 개를 이리 주시오.”

그녀는 박어둔에게 개를 받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들아, 말장난 끝에 살인나고 전쟁난다. 나라시대 정창원을 설치한 이래로 우리 일본의 재정 창고 절반이 조선에서 들어오는 물품이다. 일본과 조선은 평화롭게 지내야 서로가 부강해진다. 원래 조선 땅인 죽도는 우리가 가만있으면 그만이다. 허나 초량왜관을 잃으면 일본의 수입 절반을 잃는다, 알겠느냐.”

“어머니,”

어머니 오타마노가타를 끔찍이 여기는 도쿠가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도쿠가와는 어머니의 차분한 말을 듣자 비로소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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