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박어둔이 도쿠가와 쓰나요시에게 말했다.

“어떡하시겠소? 초량왜관을 잃지 않으려면 울릉도와 자산도(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장군의 서계를 저에게 주십시오. 그것이 도쿠가와 막부를 일으킨 이에야스의 뜻을 따르는 길이오.”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노중을 불러 말했다.

“울릉도와 자산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문구를 써주어라. 다만 조선이 초량왜관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항목도 삽입하도록 하라.”

“예.”

노중은 문서를 작성해 도쿠가와의 인장을 찍고 조선왕에게 보내는 서계를 완성했다.

서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울릉도의 태수 박어둔과 울릉도 자산도 양도감세관 안용복이 일본에 배를 타고 와 울릉도와 독도(죽도와 송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하므로, 역사와 지도 등을 상고한 결과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두 섬에 일본배가 출어하지 못하도록 조처한 일본의 국금(國禁)을 상세히 알려 주고 후히 대접하였습니다. 일본국은 지금부터 저 섬에 결단코 배를 용납하지 못하게 하고 더욱 금제를 보존하여 두 나라의 교의에 틈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다만 초량왜관은 임진전쟁 후 일본과 조선 사이의 평화와 교역의 우뚝한 상징으로 이것을 폐쇄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요청합니다.

일본국 막부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 올림”

막부 장군이 인장을 찍은 공식 문서를 받아들고 에도성을 나온 박어둔은 감격에 겨워 꾀춤이라도 출 지경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시작된 울릉도와 자산도의 쟁계를 일본과 매듭지은 것이다. 울릉도와 자산도를 지킴으로써 우리의 영토를 세 배 이상 확장했다.

울릉도와 자산도가 차지하고 있는 바다 영토는 그 크기가 엄청나다. 자산도에서 동해 북단인 송화강 하류 오호츠크해와 동해 남단 부산까지 선으로 이으면 그 바다 크기는 조선 땅 전체보다 세 배나 크다. 하지만 그동안 조정은 울릉도와 자산도의 중요성을 모르고 쇄환정책으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왜놈들에게 이 섬을 내어주고 있었다.

박어둔과 안용복은 이제 도쿠가와와의 담판으로 울릉도와 자산도를 확실히 우리 영토에 편입했다.

박어둔의 다음 목표는 이어도를 찾아 그곳이 우리 영토의 남단기점임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백두산에서 토문-송화강-오호츠크해로 이어지는 우리 영토를 찾으리라 생각했다.

박어둔과 안용복은 즉시 울산호를 타고 대마도로 들어가 초량왜관으로 갔다. 둘은 한시라도 바삐 이 문서를 조정에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밀명을 받은 초량왜관 관수(館守)는 박어둔과 안용복을 함정에 빠뜨릴 계략을 짜고 있었다.

초량왜관의 관수가 쇼군으로부터 받은 명령은 두 가지였다.

첫째 박어둔 안용복이 지닌 서계를 빼앗을 것.

둘째 박어둔 안용복을 조선의 국법을 어긴 자로 보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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