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초량왜관 북쪽 담장 밖에 있는 연향문 너머 연향대청(宴饗大廳)이 있었다. 연대청이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동래부에서 30리 거리에 있고, 일본사신이나 관리를 맞이하여 동래부사나 부산첨사가 연회를 베푸는 곳이었다. 큰 건물에는 반드시 전략적 목적이 있다. 입지적 조건과 건축물의 구조, 기능이 어떤 목적을 위해 분명히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박어둔이 보기에 초량왜관 바로 위에 거대한 건축물인 연향대청을 세운 것은 11만평에 달하는 초량왜관의 위용을 누르기 위한 진호(鎭護)의 역할이 가장 크지 않나 생각했다.

연향대청에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산해진미가 쌓여 있었고, 아리따운 기생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관수가 몇몇 부하를 거느리고 들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선여인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오신 두 영웅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자, 앉으시지요.”

박어둔은 분명 관수가 야료를 부릴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조심스레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일단 앉겠소이다만 왠지 이 자리가 편치만은 않군요.”

박어둔이 자리에 앉자마자 아리따운 두 여자가 옆구리에 붙었다.

“막부를 호통치고 오신 호걸께서 무슨 겸양의 말을 하십니까? 자, 풍악을 울려라. 대일본의 막부 장군과 담판하고 오신 두 분이시다.”

초량왜관의 관수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기생들이 풍악을 울리며 춤을 추었다.

관수가 말했다.

“에도성에서 쇼군과 담판은 또 다른 전쟁이지요. 오늘 그동안 쌓인 피로를 맘껏 풀어 보시오.”

연향대청은 풍악을 울리고 연회를 베푸는 곳이다. 특히 초량왜관에는 일절 여자가 없기에 연향대청의 행사일은 왜인이 향연을 누리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관수의 부하들인 재판왜, 상왜, 통사왜 옆에도 나비 같은 기생들이 붙었다.

관수가 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했다.

“이 두 분은 죽도에서 호키국을 거쳐 에도로 들어가 막부 쇼군과 담판을 하고 온 분들입니다. 이제 조선으로 들어가면 영웅이 될 터, 미리 눈도장을 찍어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자, 두 분의 앞날을 위하여 건배!”

“건배!”

기생들도 덩달아 건배를 하고 술을 마셨다. 잔이 몇 순배 돌고 취기가 연향대청을 감돌았다. 11만평에 천여 명이 머무는 초량왜관은 여자 냄새라고는 맛볼 수 없는 금녀의 구역이었다. 때문에 왜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왜관의 담을 넘어 강간이나 교간사건(왜인과 조선여인과의 간통사건)을 일으키곤 했다. 적발되는 순간 바로 목이 베어져 장대에 걸리는데도 매년 몇 건씩 강간, 교간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오늘은 합법적으로 여인의 시중을 받는 날이었다. 왜인들은 벌써부터 기생들의 가슴에 손을 넣고 집적이기 시작했다.

술판이 무르익어 가는데 갑자기 징징거리던 일본음악이 뚝 끊어지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래부사 납시오!”

철릭을 쓴 포졸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동래부사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을 어긴 대역죄인 박어둔과 안용복을 포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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