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진보와 보수 동시에 이해해
건강한 관점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을 때
갈등 해결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어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북한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통진당을 해산함으로써 정부와 헌재는 자신들이 북한과 똑 같음을 보여주고 말았다.” 소설가 공지영이 트위터에 올린 문장이다. 영향력을 가진 작가가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볼 때면 사실과 의견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객관적인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통진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의 과정은 엄격하였고 9인의 헌법재판관의 활동도 독립적이었고 중립적이었다. 그들의 법적 지식이나 판단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독자적인 판단과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였음을 의심할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정이입 능력이나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다시 말하면 독자의 입장이나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작가는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에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의 인격과 능력을 비난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작가가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내가 추측하건대 386세대의 지적 세례에 그 원인이 있지 않는가라는 점이다.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흔히 관점이나 주관 혹은 철학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행복관, 직업관 등 거의 모든 관점은 어떤 현상을 판단하고 의견을 갖고 행동하는데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똑 같은 상황을 비관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의 관점은 태생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성품이 다르듯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특성도 주요한 몫을 차지한다. 좌익과 우익이 타고난 성품에 상당 부분 비롯된다는 정치학계의 실증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태생적인 요소가 한 가지 축이라면 자라면서 어떤 집안에서 성장하였는가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유청소년기를 보내며 듣고 배우는 것이 관점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요소는 젊은 날에 어떤 사상적 세례를 받고 지냈는가다. 386세대처럼 억압적인 정권 하에서 대학생활을 보냈던 사람들 가운데는 그 당시에 자신들이 갖게 되었던 관점으로부터 중년, 장년기를 보내면서도 크게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된다. 공지영씨도 이런 류의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미 젊은 날을 보내버린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한참 청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진보와 보수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의 관점이나 철학에서 진보적인 주장들은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가지기 쉽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난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다. 경제적인 관점에 국한해 말하자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라스 노스 교수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려준다. 하루 24시간을 23시간 57분과 나머지 3분을 나눈다. 인간은 공동생산과 분배 체제를 긴 역사 속에서 23시간 57분 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이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진보적인 주장에 치우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건강한 관점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세월을 통해 검증받은 사상이나 가치의 공유를 제대로 수행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게 마련이다. 급격한 변화는 점점 격차 확대 시대로 우리를 이끈다. 경제적인 간격과 갈등의 확대는 우리 사회의 방향을 어디로 이끌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근래에 우리 사회가 무상복지 때문에 치르고 있는 문제도 결국 관점이 가져온 비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관점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는 사회가 아니라면 선진국으로 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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