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숙종은 영중추부사에게 박어둔과 안용복의 결박을 풀게 했다.

그리고 박어둔을 근정전으로 불러들였다.

아무리 여색에 눈먼 왕이라지만 그래도 일국의 정사를 움직이는 자였다. 어려서부터 제왕학을 통해 통치술을 익혔고,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분간할 줄 아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말해 보거라. 나라의 경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청나라 강희제와 담판하여 북방과 서해의 경계를 정해야 합니다. 북방은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송화강 이남을 우리 땅으로 하고, 서해로는 가거도 독실산을 기점으로 우리 영해로 삼아야 합니다.”

“백두산 정계비는 꼭 세울 것이다. 그 다음은?”

“일본의 막부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와는 남쪽 경계를 담판 지어야 합니다. 남쪽 끝으로는 우리의 두 발인 제주도와 대마도를 넘어 이어도가 기점이 되어 우리나라 영토로 삼아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동쪽 경계는 왜 말하지 않는가?”

“이미 동쪽 경계는 소신이 도쿠가와와 담판하여 울릉도와 자산도를 우리 영토로 삼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풍문으로 듣던 그 말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마마를 뵈면 드리려고 이렇게 도쿠가와의 국서를 숨겨 왔습니다.”

박어둔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진본 국서를 소매자락에서 꺼내 왕에게 전했다.

조선의 대왕에게 올립니다.

울릉도의 태수 박어둔과 울릉도 자산도 양도감세관 안용복이 일본에 배를 타고 와 울릉도와 독도(죽도와 송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하므로, 역사와 지도 등을 상고한 결과 두 섬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두 섬에 일본배가 출어하지 못하도록 조처한 일본의 국금(國禁)을 상기 두 사람에게 상세히 알려 주고 후히 대접하였습니다. 일본국은 지금부터 저 섬에 결단코 배를 용납하지 못하게 하고 더욱 금제를 보존하여 두 나라의 교의에 틈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다만 초량왜관은 임진전쟁 후 일본과 조선 사이의 평화와 교역의 우뚝한 상징으로 이것을 폐쇄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요청합니다.

일본국 막부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 올림

막부 장군의 인장이 찍힌 공식 문서였다.

숙종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로써 오랫동안 외교문제가 되었던 울릉도 자산도의 쟁계(爭界, 경계다툼)는 끝이 난 것이다.

도쿠가와의 국서를 읽은 숙종은 박어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장하도다. 육조의 삼공대부도 하지 못한 일을 박어둔, 안용복 자네 둘이 했으니 크게 치하할 일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