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계절의 순환을 멈추지는 못한다. 설에다 우수까지 지나고 나니 양산 통도사 영각 앞 홍매의 개화뿐 아니라 봄을 재촉하는 꽃소식이 전국에서 들려오고 있다. 며칠 전 교정의 하얀 매화 소식이 궁금하여 찾았더니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가지 끝부분에서는 몇몇 봉오리가 새봄을 환영하듯 얌전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봄의 도래를 어디서 확인하는가? 예전에는 그것을 봄꽃의 개화에서 확인하고 근대화 이후에는 여성의 화사한 옷차림에서 발견한다고 하였으나, 냉난방의 완비로 계절 구분이 분명치 않은 오늘날에는 어디에서 봄을 찾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가난한 선비의 공부는 시를 담는 비단주머니 뿐인데
봄바람이 시 구절에 불어오니 구절에서 향기가 피어나네.
흰 머리로 되씹어 보다가 남은 맛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주었더니 음미하려고 하지 않네.

貧士工夫一錦囊 東風吹句句生香
白頭咀嚼無餘味 付與兒曹不敢嘗

조선 전기 문신 이행(李簷, 1478~1534)의 <꿈속에 ‘춘풍취구구생향(春風吹句句徧生香)’이란 시구를 얻었는데 말뜻이 매우 신선하기에 대련으로 이어서 절구 한 수를 이루었다(夢得春風吹句句生香之句 語意甚新 遂聯成一絶以續)>라는 제목의 시이다. 어느 날 꿈속에서 얻은 시구에서 새봄의 도래를 이처럼 멋있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감탄하고 있으나 젊은 아이들은 음미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늙은 사람은 이 구절을 신춘의 도래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으로 판단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600년 전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간극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에서처럼 훈훈한 봄바람이 대지에 가득 불어서 학생의 책과 노트북, 장사꾼의 상품, 노동자의 공산품, 농부의 농기구 등 모든 이의 각종 물품에 봄 향기가 두루 퍼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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