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선 문현고 교사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출근길에 만난 봄꽃이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갑갑한 마음이 떨쳐지지 않는 것은 지난 해 함께 했던 아이들이 3학년으로 진급을 하면서 나도 함께 입시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사인 나도 이런데, 당사자인 아이들이 느끼는 입시의 무게는 얼마나 클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관심이 없는 아이든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교실의 분위기는 엄숙하기만 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만 봐도 꺄르르르 웃음이 굴러가던 발랄한 고등학생들이었는데 지금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이 조용하기만 하다. 행여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하는 모양이다. 야간자습 시간에 아이들을 하나씩 불렀다. 너는 어떤 사람인지, 새 학급은 어떤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다들 입시에 대한 걱정이 엄청나다.

아마도 선배들로부터 입시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는, 누가 어느 학교에 붙고 누가 떨어졌다는, 그래서 누구는 재수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겠지. 긴긴 겨울방학을 보내며 이런저런 방법으로 공부를 시작해보았겠지. 하다 보니 해야 할 것은 많고 지금껏 해 놓은 것은 없는 것 같아 불안한데, 정작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려니 마음대로 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지난 구정 연휴 때에 친척들로부터 올해 고생하겠다며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듣고, 이제껏 몰랐던 부모님의 은근한 기대에 압박을 느끼기도 했겠지.

고등학교라는 세계에 들어와 갑자기 늘어난 수업량과 야자를 경험하며 몸과 마음이 적응하기 바빴던 철없던 1학년이 지나고, 각종 학교 행사와 활동에서 주인공이 되어 고교생활의 정수를 맛보며 울고 웃던 2학년도 후다닥 끝이 나고, 나에게만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악명 높은 대한민국 고3이 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많다는 대학들 중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한숨만 나오고 이미 지나버린 1학년, 2학년 때의 성적은 돌이킬 수 없어 후회만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3월은 고3 아이들이 공부에 가장 열을 쏟는 시기이다. 수업시간은 물론 자습시간에도, 작년에 보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갈 즈음 피로에 지친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것이 새해 다짐처럼 작심삼일로 끝나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지금의 노력이 헛되이 흐려지지 않고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전진하는 끈기와 저력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이문재 시인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우리는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나무도 끝이 맨 앞이 되어 뻗어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있는 ‘끝’이 어디인지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인정하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목표를 설정했다면 지금은 그 ‘끝’이 ‘맨 앞’이 되어 힘차게 뻗어나갈 때다.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선두가 되어 힘껏 박차고 나아가는 날들로 올해가 가득가득 피어나길 바란다.

최지선 문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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