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이 일군 자동차·조선산업
국내외 여러 가지 악재로 심각한 내상
힘들수록 열정 갖고 돌파구 찾아야

▲ 김창식 뉴미디어부장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으로 대표되는 아산 ‘정주영 회장’의 기업 혼이 담긴 산업도시다. ‘왕회장’은 1970년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짜리 지폐 한 장과 황량한 미포 바닷가에 소나무 몇 그루·초가집 몇 채 선 초라한 백사장을 찍은 사진 한장 달랑 들고 ‘봉이 정선달’이 되어 은행과 선주를 설득해 미포벌판에 조선소를 지었다. 울산이 조선메카가 된 시발점에는 이같은 ‘왕회장’ 의 불타는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도시’ 울산의 영예도 정주영 회장의 열정에서 비롯됐다. ‘왕회장’은 1966년 자동차 수리공장 운영이라는 일천한 경험 하나로 당시 글로벌 기업 포드측을 설득해 한국측 파트너를 따냈다. 무모하리만큼 공격적인 도전정신과 창업가 정신이 국내 자동차산업을 일으키게 한 결정적인 한수가 됐음은 물론이다.

‘왕회장’의 역발상식 공격경영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또한번 진가를 드러냈다. 오일쇼크로 국가와 기업이 존폐의 기로에 내몰리자 ‘왕회장’은 중동의 오일머니 잡기에 승부수를 띄웠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욕심 아니냐’는 반발속에 강행한 승부수는 결국 현대가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왕회장’은 경제전쟁에서 선두에 서 기선을 잡고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 먼저 터를 잡아야 살아 남는다는 공격경영을 추구했다. 새로운 사업과 투자시 제기되는 반대의견에 언제나 “이봐, 해 보기나 했어?”라며 ‘닥공‘(닥치고 공격)을 채근했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남의 꽁무니만 쫓아가 부스러기만 먹게 된다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회장’이 ‘열정’과 ‘뚝심’으로 일으킨 경제기적은 반세기가 지나면서 휘청대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산업은 지난 50년 질주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특히 외풍에 약해 심각한 내상을 입고 말았다.

울산경제의 중추인 수출은 2011년을 고점으로 벌써 4년째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성장정점을 지나 하강기에 접어들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들어서도 5월 울산 수출은 석유·석유화학제품·자동차·선박 등 주력 품목의 수출이 전년동월대비 31.8% 감소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부동의 수출1위 지위를 경기도에 내 준 것은 고사하고 2위 자리를 지키는 것도 벅찰 지경이다. 조만간 반도체 등 IT를 앞세운 충남에 밀려 수출 3위 도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높다.

주력산업은 노쇠현상을 보이고, 미래 먹거리로 추진하는 동북아 오일허브, 이차전지, 수소산업, 서비스산업, 창조적 제조업 등은 주력산업의 바통을 이어받기에는 실체적 기반도, 성장성도 취약하고, 불투명한 것 같다. 울산이 빠른 시간안에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냄비 속 개구리’가 되어 죽어(쇠퇴)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제조업에 기대 ‘산업수도’ ‘부자도시’로 안주한다면 결국에는 ‘냄비 속의 개구리’ 처럼 오히려 변화를 어렵게 만들어 ‘독배’로 부메랑 될 수 도 있다. 울산이 다시 일어설수 있는 골든타임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왕회장’은 어렵고 힘들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발전할 수 없다며 스스로 채찍을 가했다고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금 ‘왕회장’의 ’닥공 경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울산의 오늘이다.

김창식 뉴미디어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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