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음악을 즐겨듣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오디오 디자인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가의 현대적인 하이앤드보다는 고풍스러운 디자인, 60년대 전후의 저가형 빈티지 오디오 디자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하며 특히 그 시대 명기 오디오의 디자인을 보면 품격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형태와 크기에서부터 노브의 배치, 재질과 색상에까지 하나의 기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고뇌한 흔적을 현대의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다른 전자제품과는 달리 오디오 기기의 외부는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기능들이 많기 때문에 패널 디자인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 한 마디로 앰프의 내부 기능을 외부에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패널은 오디오 기기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60년대까지는 외관에 풍기는 디자인의 이미지와 그 기기에서 뿜어내는 소리가 닮았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생긴 대로 소리를 낸다고 할까.

나아가 오디오 애호가들은 패널을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손에 닿는 감촉이나 조작감까지 면밀히 감지한다. 시각, 촉각, 청각의 총체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단순히 오디오 기기를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은 물론 디자인과 기능, 기기에 담긴 철학과 역사까지 탐구하는 복합적이며 발전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오 기기 선진국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을 들 수 있는데, 빈티지 오디오의 외관을 보면 나라별로 디자인과 소리의 특색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오디오는 스케일이 크고, 소리 또한 시원시원하다. 영국은 실용성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아기자기하고 심플한 소리를 낸다. 독일은 튼튼하고 묵직한 투박함에 차분한 소리가 장점이다. 일본은 깔끔하고 정교한 디자인에 소리 역시 세밀하다. 반면, 한국은 안타깝게도 독자적인 디자인과 완성도를 갖추기보다 모방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유는 나름의 기술과 디자인을 담아내려는 철학의 부족함에 있다고 여겨진다.

오디오 애호가들은 기기의 전통이나 역사를 중시하며 심지어 디자이너의 계보와 개념까지 공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디자인적인 요소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우리가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성향의 사람을 믿는 것처럼 외관 디자인과 소리가 닮아있는 오디오 기기는 깊은 신뢰를 주는 것이다.

울산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대학 시각디자인 전공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