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잔서가 남았지만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조금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계절의 전환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국민안전처에서 전파하는 폭염경보와 주의보를 알리는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가 연일 ‘왱~왱!’ 하는 사이렌소리를 내며 귀를 찢을 듯이 달려든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보름이 넘는 열대야현상으로 한낮의 회색빛 하늘을 쳐다보기도 겁나는 날이 지속되다 보니 불쾌지수는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져 버렸다. 어느 해인들 여름이 덥지 않았으랴만 올여름에는 유난히 그 도가 심했다는 느낌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울산은 해변 도시인데도 연이은 혹서 속의 짜증스러운 기분을 견디기 어려웠거늘 내륙의 분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스스로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라는 말로 혹서기가 끝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면 옛 사람은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창문은 푹푹 찌고 땀은 물 붓듯 흐르고
불타는 붉은 해와 구름에 낮 시간이 지루하네.
그나마 마음이 물처럼 될 수 있어서
문득 뜨거운 곳에서 청량한 기운을 짓네.

軒窓蒸鬱汗翻漿 赤日彤雲晝刻長
賴有寸心能似水 却於炎處作淸凉

이 시는 고려 말 문신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지독한 더위(苦熱)>이다. 당시에는 여름에 얼음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만큼 피서법이래야 부채질과 탁족, 수정과나 수박(西瓜) 먹기 등이 고작이었다. 이런 게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는 그저 참고 견디는 게 속편한 방법이었다. 시인은 오랜 경험에서 몸소 터득한 이 체념의 미덕을 시원스레 표현하고 있다.

푹푹 찌는 더위와 정면대응이 불가능한 바에는 속으로 다가올 가을의 청량한 바람, 한겨울의 싸늘한 북풍과 기세등등한 동장군의 위엄을 상상해 보라. 뜨겁던 주위의 분위기가 문득 싸늘해지지 않는가? 육신의 고락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니 오늘날에도 이 방법을 한번쯤 시도해 봄직한 일이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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