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울산 주변에서 가을 정취를 체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신불산 평원과 간월산 고갯마루에 군집하는 억새를 조망하는 일이다. 역광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눈부신 억새꽃의 물결이 펼쳐지고 나면 탐추객(探秋客)의 눈을 현혹시키는 전국 명산의 단풍 소식이 각종 매체를 장식하게 된다. 이미 간월재 억새밭의 가을 풍경을 감상한 뒤이니 만큼 이제는 전국의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 숲으로 눈길을 돌릴 시점이다.

비 내린 가을 산에 떨어지는 잎이 많으니

비단 위에 다시 꽃을 보탠 것이 가장 사랑스럽네.

이제까지 ‘단풍나무 숲[楓林]’을 읊은 구절이 회자(膾炙)되는데

비로소 2월의 꽃보다 붉음을 징험(徵驗)하네.

雨過秋山葉落多 最憐錦上更添華

至今膾炙楓林句 始驗紅於二月花

이 시는 고려 말의 시인이자 유학자 이색(李穡)의 <비 온 뒤에 단풍든 나무가 사랑스러워 차운하여 짓다>(雨後紅樹可愛 次韻賦之)라는 작품이다.

낙엽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린 뒤에 떨어진 단풍나무 잎들이 마치 비단 위에 놓은 자수처럼 아름다워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짐을 보여주고 있다. 또 만당(晩唐) 시인 두목(杜牧)의 시 <산행>(山行) 중의 ‘수레를 세우고 앉아 저녁의 단풍 숲을 아끼는데, 서리 맞은 잎사귀가 2월의 꽃보다 붉네.’(停車坐愛楓林晩 洄泬霜葉紅於二月花)라는 대목을 떠올리면서, 실제 비를 맞고 땅에 떨어진 단풍나무의 잎이 2월에 피는 홍매보다 더 붉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보고 있다.

이 시에서 언급하였듯이 단풍잎의 붉은 정도가 어디 봄철의 매화와 비교하는 데서 그치겠는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빨간 잎으로 그득한 숲은 휘황하게 난무하는 광채의 요란한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해 전에 내장산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빨간 단풍나무 잎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는 어느 산의 현란한 가을 잔치에 참여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 본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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