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용어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건 좋으나
본래의 취지가 훼손된 경우 왕왕 보여
무리한 개정보다 운용의 지혜 발휘했으면

▲ 강민성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지난 2002년 7월1일 민사소송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소송행위의 추완’이라는 말이 ‘소송행위의 추후보완’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런데 소송행위의 추완은 당사자가 그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인해 불변기간 내에 소정의 소송행위를 하지 못한 경우 그 사유가 없어진 후 2주 이내에 그 소송행위 자체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당사자가 기존 한 어떠한 소송행위의 부족한 점을 추후에 보완하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소송행위의 추완을 소송행위의 추후보완으로 고침으로써 보다 쉬운 용어가 되기는 하였지만 그 쉬워진 만큼 그 본래의 취지가 훼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문서의 제출의무와 관련해 ‘문서를 소지한 때’가 ‘문서를 가지고 있는 때’로, ‘그 열람을 구할 수 있는 때’가 ‘그 것을 보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사법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때’로 개정됐는데, ‘소지’ ‘열람’이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용어인지도 의문이거니와 이와 같이 그 뜻을 풀어 쓰는 방식으로 법률용어를 대치하는 것은 언어의 효율성 면에서도 문제가 있고, 의미의 구체성 내지 정확성 면에서도 개정 후 표현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지다’는 말은 소지 외에 소유의 뜻도 있고, ‘열람’이라는 말은 문서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 것으로써 단순히 보는 것(문서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거리에서 보더라도 일단 본 것에는 해당한다)과는 다르다.

2010년 3월31일에는 어음법과 수표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소구(遡求)’라는 말이 ‘상환청구’라는 말로 대치돼 어음법과 수표법에서 소구라는 말이 사라졌다. 상환청구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소구는 오직 어음관계와 수표관계에서만 사용되던 용어로 소지인이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였으나 지급이 거절된 경우 등에 배서인 등 어음관계와 수표관계의 전자(前者)들을 상대로 어음금, 수표금을 청구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상환청구는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외에도 사법관계 일반에서 실질적으로 남이 부담해야 할 재산의 출연을 자기가 했을 경우에 그 사람에게 그 출연에 대한 보상을 청구한다는 뜻(점유자, 유치권자, 임차인의 필요비 내지 유익비 상환청구 등)으로도 사용된다. 소구라는 말이 보다 구체적이고 ‘전자들을 상대로 소급적으로 청구한다’는 어음관계와 수표관계 고유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소구라는 말을 어음법과 수표법에서 삭제하고 이를 보다 일반적인 용어인 상환청구로 대치한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조치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있는 법률용어를 일반적인 법률용어로 대치하여 소멸시키는 것은 법률문화를 쪼그라들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 어음법, 수표법의 이 같은 개정은 모두 ‘어려운 법률용어를 될 수 있는 대로 쉬운 우리말로 고친다’는 법률용어 순화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개정이유에 이러한 점이 명시돼 있다). 이는 일반 국민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률문화를 만들겠다는 발상에 기초한 것인데 발상 자체에는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이미 고유한 추상적 개념이 형성된 법률용어를 무리하게 고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러한 유형의 법률용어 순화에는 극히 신중을 기하면서 비추상적 개념을 가진 법률용어로써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것, 어문규정에 어긋나는 표현, 주어와 서술어 등 문장성분의 호응이 어색한 표현, 어순이 부자연스러운 표현, 지나치게 길거나 복잡한 표현 등을 어문규정에 맞고, 쉬우며,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강민성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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