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활짝 핀 나리꽃이 군데군데 외진 들판을 밝힌다. 산딸기 익어가는 숲 길가에는 자줏빛 싸리 꽃이 화사하고, 어디선가 땅벌들이 싸리 꽃향기를 좇아 왱왱 거린다. 향기를 좇아서 꽃을 찾는 것은 벌이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본성이겠지만, 꽃향기에는 추억이 서려 있어 찔레꽃 향기에는 고향의 봄 언덕이 그립고, 아카시아 꽃향기에는 그 옛날의 과수원길이 그립다. 여름 꽃이 한창이다. 별들의 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이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듯, 꽃들도 다른 것들로부터 오는 신호에 반응한다. 서로 부딪히고 뒤엉키고 하지만, 결국 매끄럽고 조화로운 질서가 출현하니 여름 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각자 몸의 우주 안에서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연결된 상호작용이 마침내 꽃이 되는 것이니,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실상은 잠시 머무는 현상(幻)에 불과할 뿐,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도 능소화는 수직의 담벼락을 타고 넘어 기어이 하늘을 향해 피었고, 장마 끝 한여름의 햇살이 활짝 핀 꽃잎 위로 사정없이 부서진다. 봄꽃과는 달리 여름 꽃에서는 성숙한 중년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진한 향을 발하는 순백의 치자 꽃이 그렇고, 여름 호숫가에서 고고히 수면을 밝히는 연꽃의 자태 또한 그러하다.

최근 의학계의 한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불면증 환자가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 2020). 더구나 기상청은 올 여름 우리나라 기온은 지난해보다 높고 폭염일수는 평년의 2배 이상일 것으로 내다봤다. 폭염일수가 늘어나면 열대야로 불면증도 늘어난다. 불면증 환자는 각종 질병의 발생위험이 증가하고 사망률 또한 일반인보다 높다.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칙은 신체활동을 늘리고 자주 자연광을 접해야 한다. 신체활동은 수면에 부정적인 물질을 중화시키고, 낮 동안 경험한 자연광은 밤이 되면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의 분비를 촉진 시킨다.

여름 꽃이 한창이다. 꽃들도 밤이 되면 수면을 취한다. 한낮에는 광합성을 하느라 숨을 헐떡이던 하얀 개망초도 밤이 되면 잎들을 오므린 채 수면을 취하고, 호수 위 수련(睡蓮)들도 밤에는 꽃잎을 오므린 채 깊이 잠(睡)을 잔다. 결국 꽃들도 수면을 통해 낮과 밤의 리듬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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