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 변화
SW업데이트로 라이프사이클도 늘려
모든 일은 옳은 이치로 돌아간다

▲ 정연우 전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사필귀정(事必歸正). 일은 반드시 바르게 되돌아간다. 이 칼럼의 마지막 화두다. 어떤 꾸밈이나 공작도 소용없이 결국 본래의 바른 모습을 되찾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명은 자연에 도전하는 인류활동의 역사라는 인류애 충만한 자만적(?) 인식이 있다. 황하, 메소포타미아 등 인류 문명 발상지가 모두 큰 강 유역에 위치한 이유는 비옥한 토지의 높은 생산성과 평지의 교통, 온화한 기후 때문이다. 큰 강은 늘 주기적으로 범람하는데, 인류는 둑을 쌓아 곡창지대를 지켰다. 관개수로로 농토를 확장하며 기후를 극복하기도 했다. 벌목과 조림, 기상 예측까지 이제 문명은 시스템으로 재해에 대비한다. 하지만 첨단 21세기 문명인 지금도 홍수와 가뭄, 태풍, 산불, 지진, 해일과 기상이변은 전 지구적 뉴스에 오른다. 다스려질 줄 알았지만, 언제나 자연은 극복(?)당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와 우리와 대면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 제 아무리 문명의 인류라도 결국 자연계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은 모더니즘을 투영하는 수단으로 20세기 내내 온 세상을 휩쓸었다. 처음에는 유럽과 북미가, 그 다음은 일본이 지금은 우리나라와 중화권을 비롯 동아시아가 맹위를 떨치는 중이다. 20세기 말, 21세기 초까지의 디자인을 보자. 형태 구조의 특이점을 산업 트렌드에 맞추고, 기업이나 국가 성공의 도구적 역할이 곧 디자인의 가치였다. 기술발전으로 품질은 향상되었지만,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오히려 더 짧아졌다. 시장의 경쟁 과열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사는 일반적으로 5-10년마다 신형 모델을 낸다. 하지만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는 신차 출시 주기가 2년11개월까지 줄어들었다. 차를 사면 금방 구형이 되어버린다는 웃픈(?)세태를 기억하는 여러분도 많을 것이다.

자동차가 그 정도였으니, 타 제품군의 신모델 출시간격은 수개월까지 짧아졌다. 쏟아져 나온 수많은 공산품들은 과연 당시 의도한 디자인대로 기능하였을까? 여기저기 선이 들어간 복잡한 형상, 특이한 재질과 컬러의 플라스틱 덩어리들이 아우성쳤던 시기. 당시 제품이나 자동차 디자인이 한결같이 표방했던 ‘차별적 고급감’은 허울이었음은 증명이 되고도 남는다. 마케팅이 시키는 대로 춤을 춘 세기말 디자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하고 짧은 라이프사이클 폐기물이 되었다. 불필요를 외면하고 이윤과 사용자 장식(?) 욕구충족을 위해, ‘산업디자인’이라기보다 ‘상업디자인’이었던 디자인은 영원히 비판받는 흑역사다.

혹독한 반성을 거쳐 문명이 재정립중인 자원순환과 공존, 푸른 지구에 대해 디자인도 다시 답하고 있다. 선순환 소재와 제조공정, 사용 후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은 산업디자인을 재정의하고 있다. 사용자 경험, 서비스, AI, 타 분야로의 융합까지 영역의 확대를 통해 오늘 날 디자인의 책임은 ‘상업디자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오늘 나는 또 하나의 폐기물을 디자인하고 있진 않은가? 어떤 거짓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봄은 과거 선한 디자이너의 양심이나 철학이었다면 지금은 제일 먼저 생각하고 매일 짚는 기본이다.

요란한 형태와 복잡한 구조들은 간결하고 단순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한번 출시된 제품은 SW업데이트를 통해 사용성을 향상시키며 라이프사이클을 늘리는 시스템이 되었다. 스타일링만 미니멀한 상태를 넘어 모더니즘을 추구했던 진정한 디자인의 가치를 되찾는 것 같아 기쁘다. 강을 아무리 둑으로 막아도 언젠가는 다시 범람한다. 지구적 관점으로 보면, 태풍은 인류에게 재해지만, 자연에게는 카오스를 되돌려 놓는 회귀 기능, 일종의 리셋 버튼이라고 한다.

2014년 UNIST 임용 직후 경상일보의 제의로 시작했던 칼럼이 9년이나 되었다. 필자도 오래 몸담았던 UNIST를 떠나 서울로 돌아와서 한참 새 일에 적응 중이다. 일상과 이슈, 개인적 견해와 세태 비판, 미래 예측까지 다양한 주제로 칼럼을 썼다. 소중한 피드백과 출간제의도 얻게 해준 경상일보와 독자 여러분에게 안녕과 발전을 고하며 칼럼을 마친다. 어떤 공작을 만들고 소동을 일으켜도, 디자인은 물론이고, 모든 일은 옳은 이치로 되돌아간다. 사필귀정.

정연우 전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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