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려면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부터 건설해
핵발전소 안전운영 환경 조성을

▲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9월이 넘어가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한낮의 기온이 여전히 30℃를 웃돌며 열대야도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냉방을 멈출 수 없다 보니,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8월 들어 최대 전력수요 기록을 6번이나 경신했다고 한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 재앙의 하나인 폭염으로 인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다시금 원자력 발전으로 돌아가는 추세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의 기름값이 폭등했으며 유럽 전체에 에너지 부족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탄소 제로 목표치를 달성하려고 애쓰는 유럽 국가들은 저탄소 배출과 신뢰할 만한 에너지원으로 원자력 발전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새로운 원자로 14기를 세우겠다고 발표했으며, 독일은 후쿠시마 재앙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탈원전 정책에서 남은 핵 발전소 3기 가운데 2기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연기했다. 우리나라와 지척인 중국은 서해와 맞닿은 중국 동부 해안지대에 150기 이상의 새로운 원자로 건설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가스에 의존하던 동유럽 국가들도 원전 건설에 관심을 기울여, 얼마 전 우리나라가 체코에서 원전 2기 건설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갑작스런 핵의 르네상스를 마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핵 폐기물 처리 문제이다. 핵 폐기물은 다른 산업 폐기물들과는 다르다. 핵 폐기물은 방사선과 감마선을 방출해 세포를 파괴하고 DNA를 산산조각 낸다. 이로 인해 돌연변이와 암, 과다출혈을 초래하고, 결국에는 우리의 생명을 앗아간다. 또한 핵 폐기물은 시간의 단위가 다르다.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는 몇십 년이 지나면 부패하고, 플라스틱은 천년이 걸려 부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 발전소 노심에서 만들어지는 플루토늄 239의 반감기는 2만4100년이며, 원자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료인 우라늄 235의 반감기는 무려 7억 년이라 하니 핵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지질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핵 폐기물의 처리 방법으로 가장 손쉽게 해 왔던 게 지금은 금지된 해양 투기였다. 핵 폐기물은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 폐기물로 나누어 처리하고 있다.

26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인 우리나라는 현재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2015년부터 중저준위 핵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를 건설 운영 중이다. 경주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 병원 방사능 시설 등에서 사용한 장갑이나 부품 등 방사성 물질 함유량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다. 경주 방폐장의 건설로 중저준위 핵 폐기물의 저장 처리는 숨통이 트였지만, 정작 원전 확대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발전소 건설만큼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설치다.

원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려면 고준위 방폐장을 설립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란 사용 후 핵연료 등 열과 방사능 농도가 높은 폐기물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사용 후 핵연료가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가장 안전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식은 심층 처분이라 한다. 높은 열과 방사선을 방출하는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 용기에 담아 지하 500~1000m 천연암반 내 시설에 영구 보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경주의 저준위 방폐장 건설에만 20년이 넘게 걸렸듯이, 지금부터 고준위 방폐물 시설을 준비해도 완공까지 37년이 걸린다고 한다. AI 시대에 접어드는 이 때, 전력 사용량은 그야말로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이상 기후로 매년 몰려오는 폭염과 한파를 견디기 위해서 전력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손쉽고 값싸게 전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원자력이 대세로 다시금 떠오르는 지금, 이러한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문제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어 보인다. 필요한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뿐 아니라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 방법에 대한 연구 또한 매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서둘러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의 건설에 박차를 가해 좀 더 안전하게 핵 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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