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용 검찰총장이 8일 갑작스레 공식기자회견을 자청, 안기부 예산 선거불법 지원 사건에 대한 엄정 수사를 천명한 것은 검찰 수사의 정치적 색채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사건에 대해 일절 언급을 삼가온 박 총장이지만 이날 만큼은 이번 사건이 여야 정치권의 정쟁 대상으로 논란거리가 되고 국민들에게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에 임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데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박 총장은 "문제가 된 안기부 자금은 결코 정치자금이나 통치자금이 아니다"고 수차례 언급하며 "국민의 혈세가 특정 정당의 선거 자금으로 들어간 범죄행위인데 마땅히 국민들이 분노할 일 아니냐"고 수사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박 총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사건에 연루된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경고메시지도 담고 있다.  박 총장은 회견에서 정치권에 대한 정쟁자제 당부와 함께 96년 4·11 총선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겸 선대본부장을 지낸 강삼재 의원 등 사건의 중심에 있는 구여권실세 정치인들을 상대로 검찰 수사에 적극 임해 줄 것을 촉구했다.  박 총장은 특히 강 의원에 대해 "공당의 사무총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본인이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검찰에 나와 수사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구, 압박수위를 높였다.  강 의원 수사 여부가 향후 수사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만큼 최고의 쟁점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이날 오후 3시까지 자진출두하도록 통보한 강삼재 의원을 비롯한 야권 정치인들은 대부분 당론을 이유로 검찰 조사에 계속 불응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을 놓고 정치적 사건 수사의 형평성 문제가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다.  야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97년 대선 직전 중단됐던 김대중 대통령의 비자금 고발 사건이나 "20억+α" 설 등과 비교, 이번 사건의 성격이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 기자회견장에서도 제기됐다.  김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중단한다고 검찰이 선언했을 때 박총장은 비자금 고발사건 수사의 핵심 사령탑인 대검 중수부장이었다.  박 총장은 이에 대해 "전국에 산재한 모든 범죄 행위를 다 수사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다소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뒤 "지금은 안기부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뿐"이라고 받아넘겼다.  기자회견 도중 일부 보도진은 "수사내용이 최근 여권 고위인사들 입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점 등 때문에 검찰수사의 순수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고 묻자 박 총장은 "계좌추적을 하다보면 금융기관 사람들도 내용을 알수 있는 것 아니냐"며 "어쨌든 수사 내용은 검찰이 지금까지 밝힌 것이 전부이며 자료를 따로 만들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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