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책임감 없다’는 총선 결과에도
尹대통령 제대로된 반성은 없어보여
트루먼처럼 책임자의 자세 보여주길

▲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근래 국내 뉴스에 여러 번 등장하는 영어 문구가 눈에 띈다. ‘The BUCK STOPS here!(더 벅 스톱스 히어!) 이다. 이 명패의 원조는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Truman)으로, 이를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두고 일하였다. 이때 BUCK은 수사슴도 아니고 1달러도 아니고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 글귀를 좌우명(motto)으로 삼고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최종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구가 준 선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 이것을 사서 놓아두기도 한다. 자신이 트루먼을 좋아해서든, 자신이 최종 결정권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든, 자신이 모든 업무를 진정 책임지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든. 한국에서는 이 명패 아래쪽에 CEO의 영어이름을 새겨 넣는 것을 보면, 대개 자신이 최고결정권자인 회장이나 사장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 명패를 두는 듯하다.

그런데 이 영어 명패가 어떻게 한국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되었을까?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당선되면 이 명패를 자신의 책상 위에 두고 싶다는 희망을 알아차린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2022년 5월 방한 때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명패를 2024년 2월 녹화방송에서도 앵커에게 자랑하였고, 동년 5월 1년9개월만의 기자회견에서도 이 명패를 책상 중앙에 놓고 모두발언을 하기도 했다. 분명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명패임이 틀림없다. 한국어로 여러 해석과 번역이 가능할 터인데, 무슨 뜻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걸까? 대통령실 쇼츠를 보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번역의 의미는 국정의 중요한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법적이든 정치적이든 도의적이든. 그러나 공언과 다르게 최근 총선 결과는 현 정부와 여권이 국정운영에 책임감이 전혀 없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보수신문의 한 논설위원은 ‘The buck stops here? 아니면 말고’라는 기고문에서 “대통령의 선의는 잘 알겠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꼭 일치하진 않았다.” “책임 미루지 않는 당당함 아쉬워”라는 평가를 하였다. 앞으로도 책임지는 국정운영을 하지 않으면서 이 문구를 계속 쓴다면, 책임은 안 지고 권한만 갖겠다는 뜻으로 ‘내가 최고 결정권자야’로 읽힐 것 같다.

이 명패의 원조인 트루먼 대통령은 최종결정권자로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공산주의의 발호라는 국제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쉬운 결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1944년 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1945년 전임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급사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취임 직후, 독일군 항복에 이어, 일본군의 빠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트루먼은 원자폭탄 투하라는 힘든 결정을 하게 된다. 그 후, 소련이 세계평화를 위협하자, 적시에 반소·반공을 내세운 ‘트루먼 독트린’을 선포하였다. 또한, 유럽부흥 원조계획을 실시해 인류애로 유럽을 재건하고, 자본주의 질서를 공고히 하였다. 살얼음 같은 냉전체제가 생겨났고, 유럽을 소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창설을 주도하였다.

한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트루먼은 미군 참전을 주저 없이 결정했다. 전쟁이 길어지자, 중국에 원자폭탄 투하를 주장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고심끝에 해임하기도 하였다. 트루먼은 세계사에 남을 굵직한 결정을 할 때마다 책상위 명패를 보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답은 항상 “The BUCK STOPS with ME!”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국정 최종 책임자로서 문제해결을 위해 적과도 낮은 자세로 소통에 힘쓴 것이다. 파병과 원조 인준권을 가진 의회에 여야를 아우르는 특유의 친화력, 소통능력, 겸손함을 실천함으로써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였다. 백성과 직원들은 상사의 명패 퍼포먼스보다 그 정신의 실천을 고대하고 있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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