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 꺾어 산(算) 노코 무진무진 먹새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쭈그려 매여가나 유소보장에 만인이 울어주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 뜨고 가랑비와 굵은 눈, 소슬 바람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 할고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어쩌리.

인생 무상…후회말고 술한잔 하세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사랑은 눈으로 오고, 술은 입으로 오네” 노벨수상자 예이츠의 권주가이다. 이 문장의 예를 보더라도 남자는 시각적인 매혹에 쉽게 빠지고 여자는 청각으로 달콤한 속삭임에 쉽게 무너진다고 볼 수 있겠다. 술꾼들의 변명 같은 권주가를 들어본다.

‘꽃 필 때 비바람 많고 인생살이 이별이 많다네 그대에게 금빛 잔으로 권하노니 넘치는 잔 사양 말게나’ 당나라 시인 우무릉의 권주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시조 장진주사는 당대 최고의 문인이며 정치가인 송강 정철 또한, 인생이란 허무한 것임을 전제한 권주가로서 반복과 대조, 병치로 표현의 묘를 살린 절창인 시조이다.

나무 관마저도 못 쓰는 상놈(조선시대 천민)들, 거적데기로 말아서 지게에 얹혀 지고 마지막을 가는 인생이나, 만인이 따라 울며 유소보장에 수술을 내리 드리운 비단상여를 타고 가는 인생이나 수풀 속에 가 누우면 그 누가 한잔 술을 권할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잔나비 무덤 위를 건너뛰며 휘파람 불 때 그때 후회한들 어쩔텐가.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 남자는 밤마다 술에 만취한 상태로 새벽에 귀가하며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오.’하는 변명을 내려놓기도 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누웠는다/ 잔 잡아 권 할이 없으니 그를 설워 하노라//

백호 임제는 평안도 부사로 부임하던 중에 황진이 무덤가에 들러 한잔 술을 따루며 읊은 시조이다.

권주가 없는 술을 마시느니, 차라리 임 없는 술을 마시겠다고 술 한 잔을 배우지 못한 주변머리로 필자도 한 마디 거들어 본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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