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지난 6일은 ‘작은 더위’라고 불리는 소서(小暑)였다. 이 무렵 논에 심어진 모들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논둑과 밭두렁에는 풀이 우후죽순으로 자란다. 장마가 6월20일 전후부터 시작됐으니 이 즈음 불쾌지수는 가히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이 맘 때는 온갖 과일과 채소들이 쏟아져 나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다. 오이, 애호박, 감자는 지천이며, 자두, 복숭아, 토마토, 수박, 참외, 살구는 산더미로 출하된다. 또 이 때부터 새로 수확한 밀이 수제비 등으로 밥상에 올라온다.

한숨과 눈물로 간 맞춘/ 수제비 어찌나 칼칼, 얼얼한 지/ 한 숟갈 퍼올릴 때마다/ 이마에 콧잔등에 송송돋던 땀/ 한 양푼 비우고 난 뒤/ 옷 섶 열어 설렁설렁 바람 들이면/ 몸도 마음도 산그늘처럼/ 서늘히 개운해 지던 것을…(후략)

‘수제비’ 일부(이재무)
 

수제비는 조선 1517년에 최세진이 저술한 <사성통해>에 ‘수져비’라는 표현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 중기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의 <정청일기>에는 ‘구름을 물에 띄워 삶은 것 같다’는 뜻의 ‘운두병(雲頭餠)’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일설에는 손으로 접는다는 의미의 ‘수접(手摺)’이란 말이 지금의 수제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설은 없는 상태다.

소서는 옛날부터 농사일을 잠시 쉬며 밀가루 음식을 먹는 날로 알려졌다. 특히 밀은 음(陰)의 기운을 가진 대표적인 음식으로, 열을 내려주고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효능이 있어 더위를 식혀준다. 하지만 우리 밀 농업은 1982년 밀수입 자유화와 1984년 정부 밀 수매 폐지로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다.

수제비를 먹고 나면 가장 시급히 해야 하는 일이 피뽑는 일이었다. 지금은 제초제를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한포기 한포기 모두 손으로 뽑아야 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피와 모를 혼동해 아버지한테 혼날 때도 있었다. 우리 속담에 ‘피 다 잡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 피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피는 애초 곡식이었다. 중국 고전 <주례>에 나오는 오곡(五穀)은 벼·기장·피·보리·콩 5가지를 말한다. 지리산 피아골은 피를 작물로 재배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피밭골’ 또는 ‘직전(稷田:피밭)’이라고도 불렸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라는 표현은 ‘피죽 한 그릇’의 소중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소서 무더위에 피죽 한 그릇이라도 넉넉히 드시길.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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