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어제는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였고, 모레는 중복(中伏)이다. 울산은 최근 며칠 동안 30℃를 훨씬 넘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 속담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염소 뿔은 동물 뿔 가운데 가장 단단하기로 유명한데, 이 뿔이 녹아내린다니 대서 더위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이런 북새통에 오는 25일에는 두번째 복날인 중복이 돌아온다. 伏(복)자는 ‘엎드리다’ ‘굴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개가 사람 옆에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염소 뿔은 녹고 개는 숨을 헐떡이며 엎드리는 계절, 사람은 오죽할까.

지난 1월 국회에서 ‘개식용 종식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식용 목적의 개 사육·도살·유통·판매 행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개를 식용 목적으로 도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다만 위반 시 처벌되는 것은 유예기간 3년을 거쳐 2027년부터다.

긴 역사를 가진 보신탕은 88올림픽 때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로부터 곤욕을 치렀으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보신탕에서 영양탕, 사철탕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제는 법이 개의 도살·판매를 엄격하게 금지하게 됐으니 우리나라 음식문화에서 보신탕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우리의 자손들은 ‘한 때 우리 조상들은 복날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추억할 것이다.

개식용 종식법이 통과되자 올해 초복 때는 보신탕집이 한산해졌다. 대신 흑염소(사진) 집 손님들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흑염소로 끓이는 일명 ‘양탕’은 개고기와 식감, 맛이 비슷하고 고단백, 고칼로리라는 점에서 손님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흑염소 가격도 덩달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한다.

염소는 한자로 羔(고)를 쓴다. 새끼 양(羊), 흑양(黑羊)이란 뜻이다. 염소나 양이나 다 양(羊) 자가 들어가 있고, 그 외관도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고사성어 중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이 있는데, 해석하면 양머리를 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이 고사성어를 보면 옛날부터 개고기가 일상적으로 판매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또 양·염소 보다는 개고기가 질적으로 못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아무래도 올해는 복달임 문화가 개에서 염소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염소 뿔도 녹는 계절에 모두들 건강하시길.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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