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무더운 여름도 가고 어느덧 시원한 공기를 맞았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기에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는 절기의 신호가 참 반갑다. ‘더울 때는 휴가 보다는 차라리 에어컨 바람이 최고’라지만 무더위를 피할 수 없는 이웃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연일 들리는 ‘역대 최고 무더위’ 예보를 들으며 폭염으로 힘들어 할 사람들 걱정으로 고민하다가 현장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입장이 되어보면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즉각적으로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초부터 여러 곳을 찾아 다녔다. 동네 경로당을 찾아 지역 어르신들이 어떻게 여름을 나고 계신지 살펴보았고, 바늘처럼 살갗을 찔러대는 땡볕 속에서 택배물품을 배송하는 택배노동자를 따라 상자를 들고 주택가와 골목을 돌아다녔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날씨에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환경공무직들과 함께 땀을 흘렸으며 수온 변화로 한때 극성을 부렸던 해파리 방제 현장에도 배를 타고 나가 직접 해파리도 잡았다.

또 여름에도 안전한 동네 만들기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자율방범대를 찾아 함께 동네 순찰을 하며, 이분들이 우리 지역 사회에 얼마나 많은 애정과 책임을 갖고 있는지 새삼 큰 감동을 받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 함께 해 보니 그분들의 고충과 노고를 생생히 알 수 있었고, 행정에서 어떤 부분을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할지 더욱 명확해졌다.

구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을 겪게 된다. 구청의 사업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마워하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불편을 호소하며 불만을 터트리는 분들도 있다. 요즘 MZ청년들 사이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이른바 ‘갑질민원’이다. 안타까운 일을 겪는 공무원들의 사례가 잇따르자 최근 들어서는 갑질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강화되고 있다. 우리 구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비상식적인 일로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지원 대책을 추진 중이다.

이런 보호 대책도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서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둔 7월 초, 동구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한 여성의 편지가 구청장실에 전해졌다. 의지할만한 가족 친지도 없어 힘들었는데, 구청과 동 주민센터의 공무원이 내 일처럼 보살펴준 덕분에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다시 힘을 내어 살고 있다며 여러 직원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꼭 칭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분이 특히 고마워한 부분이, 자신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공무원들이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을 챙겨주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몰라서 냈던 교육비도 환불받고, 에어컨도 지원받아 건강하고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고 있다며, 요즘 뉴스에 공무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많이 들리는데 자신의 편지가 작으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흔히 공무원을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영혼 없는 철밥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같이 일하면서 지켜본 공무원들은 모두 주민들의 입장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고민하는 따뜻한 마음과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과 열정을 갖고 있다.

우리 구에서 주민 복지와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인데,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 때문에 사업이 당초의 계획만큼 성과를 못 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연되거나 예산과 인력이 추가로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내 생각만 하지 말고, 네 생각을 해 보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 직원들이 한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노고와 애씀을 알아준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준 한 주민의 따뜻한 편지 한통이 참으로 힘이 되는 하루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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