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도 이면 ‘공해도시’ 불명예
경상일보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
민·관·산업체·학계 등 합심 노력
친환경 생태도시 울산으로 거듭나

▲ 이수원 초대 울산시 보건환경연구원장

공해도시 울산을 친환경생태도시 울산으로 바꾸는 데에는 경상일보가 있었다.

1989년 5월15일 창간으로부터 지령 10000호 되는 날 까지 경상일보사 사회부 공해담당 기자들은 밤낮 없이 공해현장을 뛰어 다니며 취재해 생동감 주는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렸고, 신문사는 사설로 개선의견을 제시했다. 또 전문가들의 시론과 시민들의 의견을 게재하고 특집을 실어 독자들에게 더욱 큰 호응을 받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경상일보의 도움을 받아 공해도시 울산을 친환경생태도시 울산으로 바꾸는데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1981년 12월1일 경상남도 보건사회국 위생과 공해방지계 공해업무 주무를 맡으면서 고향 울산의 공해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당시 공해로 피해를 당한 많은 울산시민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창원 소재 경상남도청을 방문해 민원을 제기하고, 울산지역에서는 피해주민들이 공단진입로를 차단하는 등 과격한 집단행동들이 이어졌다. 모든 언론이 대서 특필로 보도했으며 울산 공해문제는 국가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1989년 창간한 경상일보는 울산의 공해문제를 발빠르게 취재해 시민들에게 알렸다.

필자는 담당자로서 진상파악, 업무보고, 해결 방안 등을 고심하면서 당시 중앙 요로에 울산 출신 지인들께 심각한 고향 울산의 공해문제를 전하고 중앙정부의 공해피해 조사를 이끌어 내었다.

공직에 있으면서 울산 공해와 관련해 경상일보를 스크랩한 기사와 이를 모은 21권의 스크랩북
공직에 있으면서 울산 공해와 관련해 경상일보를 스크랩한 기사와 이를 모은 21권의 스크랩북

피해조사에서 공장에 의한 피해로 확인돼 1985년부터 국비로 공해피해지역 주민 이주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상남도 소속 공무원으로는 울산의 공해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어, 환경부 지방청 설치 요원으로 지원해 1987년 5월15일 환경부로 옮겨가 울산·온산 오염물질 배출업소 관리체계를 마련했다.

그 이후 10여년 남은 공직을 지금까지 경험하고 공부하며 체득한 나만의 노하우로 고향 울산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1992년 11월17일 울산시로 옮겨와 2003년 6월30일 공직을 마치는 날까지 목표를 수행했고, 성공적으로 해결하였다고 자부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8만 인구의 농어촌이던 내 고향 울산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경제개발 목적으로 건립된 공장들의 무분별한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공해도시 울산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민관, 산업체, 학계, 언론 등이 합심 노력으로 친환경 생태도시 울산으로 바꾸었다고 자부한다.

이와 같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경상일보사와 기자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 공직에 있으면서 울산 공해와 관련해 경상일보를 스크랩한 기사와 이를 모은 21권의 스크랩북(위).
▲ 공직에 있으면서 울산 공해와 관련해 경상일보를 스크랩한 기사.

필자는 현직에 있을 때 매일 보도되는 환경기사를 체크하고, 지면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을 만들고 업무에 활용했으며, 기사를 작성한 담당기자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답을 찾기도 하였다.

공직을 마치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경상일보에 시론을 쓰고 울산 환경문제에 대한 기고도 하며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열심히 읽고 환경기사는 계속 스크랩하고 있는 진짜 애독자이다.

필자가 보관하고 있는 환경기사 스크랩북(1993~2024년)은 21권으로 우리 울산의 환경역사책이다.

그동안 스크랩했던 환경기사를 쓰신 경상일보 환경 담당 기자는 곽종렬, 최정식, 하현조, 송귀홍, 이재명, 김창식, 조재훈, 서찬수, 추성태, 최석복, 박정훈, 서대현 등이다. 또 생동감 있는 사진을 실은 기자는 임규동, 김경우, 김동수 등이다.

이 글을 빌려 울산시민의 한 사람이자 환경 현장의 동료로, 지령 10000호 동안 큰 역할을 한 경상일보사와 기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수원 초대 울산시 보건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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