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夢遊) 3
노향림

이번 생 말고
내 죽어 다음 생 꿈 꿀 수 있다면
만년설 휘덮인 히말라야의 도도한 거봉쯤
폭설치는 변덕스런 날씨 속에 태어나리

아무데서고 만나는 빙산사원
혹한 속에 해체된 육신과 영혼 모두들
눈빛 날카로운 야생의 날짐승에게 황홀하게 먹히도록
폭설과 바람 떼메고 온 순례자처럼 나뭇가지에
흰천 붉은 천 알록달록 걸어놓으리

가난도 겨워 늘 행복해 하는 순한 고산족되고
나뭇가지에 소중히 간직한 종이돈을 펴 공손히 바치듯
눈꽃 핀 한 조각 영혼에게 조금만 더 머물다 가며
금빛 짧은 해 쨍쨍한 하늘을 향해
이마 서늘해지도록 기도하리

설산에서 흘러 내리는 차고 맑은 물 한 방울도
소중히 여겨 손바닥 적셔 세수를 하리
환하게 눈 녹은 소리 몇 방울씩 뚝뚝 떨어지며
받아 마시리. 받아 적으리.
(")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꿈"이야기. 수정처럼 영롱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다시 태어난다면 폭설이 내리는 가난해도 행복한 히말라야의 고산족으로 태어나고 싶단다. 어떤 가혹한 시련도 정면대결 하겠다는 시인의 각오. 어떤 가난도 즐기며 살겠다는, 순례자 같은 초월적 삶의 자세가 투명한 햇살처럼 손에 잡힌다. 폭설, 빙산, 만년설 등등의 장엄한 겨울 이미지들, 한 폭의 파노라마로 가슴을 물들인다. 독자에게 생기와 희망을 주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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